쫭족

작성자: 더덜기님    작성일시: 작성일2016-12-26 10:58:05    조회: 288회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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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서쫭족자치구는 이들의 주요 집거구이다. 그 외 광동, 귀주, 운남, 호남 등지에도 살고 있다. 쫭족집거구는 지형이 기이하고 특이하며, 산수가 수려해, 자연풍경이 아주 아름답다. 이곳의 기후는 온화하고 우량이 충족해 다열대, 아열대작물이 잘 자란다. 농산품은 주로 벼, 옥수수, 감자류이다. 그리고 삼칠, 합계, 회향유는 쫭족지구의 유명한 특산이다.


쫭족은 본 민족의 언어문자가 있는데 쫭족은 한장어계 쫭뚱어계 따이어지에 속한다.


bul2.gif 인 구 : 15.555.820(1990)


bul2.gif 언어와 문자 : 쭈앙어(漢藏語系 장동어족). 남송때부터 한자 비슷한 '투수'문자가 있었는데, 사용 범위가 넓지 않아 1955년에 중국이 라틴자모를 이용한 문자를 만들었고, 1982년에 개정을 한 바 있다. 그 후로 신문과 잡지, 책 등의 출판이 활발해지고, 이 문자로 교과서도 만들었다.


bul2.gif 종 교 : 자연 숭배를 했었는데 당송 때 도교와 불교가 전파되었고, 근대에 와서는 기독교와 천주교의 교회가 세워졌다. 그러나 많이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bul2.gif 기 타 : 중국의 소수민족 중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민족이다. 그래서 그 사는 지역에 따라 20여종의 명칭으로 불리우던 것이 중국정부 수립 후 "똥족(潼族)"으로 통일되었다. 그후 1965년 주은래(周恩來) 총리의 제창과 국무원의 비준을 얻어 "쭈앙족(壯族)"으로 개칭되었다.


쫭족은 중국 고대 월(越)나라 민족의 한 지파가 발전해 내려 온 것으로. 당, 송대에 이르러서는 리랴오(俚僚)라고 불리었으며, 주, 현을 견제하는 기구를 두어 쭈앙족을 통치하였다. 원, 명, 청대의 중앙왕조시대에 이르러서는 쭈앙족지구에 토관제도(土官制度)를 설치하여 토관(그 민족 출신의 관리)들에게 각종특권을 주어 정치, 경제의 통치를 결합시킴으로써 쭈앙족지구의 통치를 강화하고 봉건영주제 사회를 장기간 보존토록 하였다.

bul2.gif 민족원류

; 인구는 15,700명(1997년)으로 고대 바이위에족(百越族)무리중의 계파인 시오우(西歐)와 루어위에(駱越)의 후예이다. 진(秦), 한(漢), 당(唐)대를 거치며 많은 변화가 있어, “ Bu nong(布 ) ”, “ Bu yi(布夷) ”, “ Bu tai(布泰) ”, “ Bu ya nong(布雅農) ”, “ Bu zhuang(布壯) ”, “ Bu sha(布沙) ”, “ Bu yi(布依) ”, “ Bu yue(布越) ”, “ Bu tu(布土) ”, “ Bu man(布曼) ”등 다양하게 불렸는데 “ Zhuang족(壯族) ”은 “ Bu zhuang(布壯) ”에서 비롯된 호칭이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송(宋)나라이전의 “ 바이위에(百越), 바이푸(百 ), 시오우(西歐), 루어위에(駱越), 우쉬(烏滸), 리(俚), 랴오(僚) ”등을 선조로 여긴다. 명대에는 량( )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명·청대에는 이미 “ Zhuang(?) ”이라는 호칭으로 널리 불렸다. 모두 광시자치구에서 옮겨왔다.


bul2.gif 문자 및 보급실태


; 일찍이 당(唐)대 이래로 한자를 모방한 사각형의 토속(土俗)문자인 소위 황콸쭈앙자(方塊壯字)를 토기에 그림으로 그려 사용했으나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사장된 것을 1989년 9월 민간에 전래된 4,800여 글자와 음이 있고 쓰는 방법이 다른 8,000여 개의 자체를 정리한 《고쭈앙자자전(古壯字字典)》이 광서(廣西)민족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오랜 동안의 투스제도(土司制度)아래 투관(土官)의 우민정책으로 청(淸)조말까지도 일반백성은 글을 못 배우게 했다. 1955년 로마문자를 이용한 병음문자인 쭈앙문방안(壯文方案)을 마련해 1957년 11월 29일 비준을 거쳐 시행하려 했으나 좌파운동과 문화혁명으로 중단되다가 1981년 7월 광서쭈앙족자치구 소수민족언어문자공작위원회는 기존의 Zhuang문(壯文) 기초안을 토대로 쭈앙문방안(壯文方案; 修正案)을 마련해서 “ 북부방언 용베이(邕北)토어 우밍현(武鳴縣) 수앙챠오화(雙橋話) ”를 표준음으로 문자를 제정해 학교에서 보급 실시하고 있다.


bul2.gif 생 활 풍 습 및 사회제도


; 고대의 위에족(越族)과 깊은 관계를 갖고 생활한 농경민족으로 쌀을 주식으로, 일찍이 춘탕(春堂)이라는 쌀 가공법을 사용했다. 쌀국수라고 할 미시엔(米線)을 즐기며, 명절에는 오색(五色)밥을 지어 먹는 등 다른 민족과 거의 유사하다.


(1) 가옥; 고대 위에족(越族)에게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간란(干欄)식 건축양식은 마란(麻欄), 고란(高欄), 갈란(葛欄), 각란(閣欄)등 다양하게 부르는데 흙과 목재를 사용해 2층을 지어 아래층은 창고와 가축의 우리로, 위층은 사람이 거주한다.


(2) 의상; 주로 여자의 의상형태에 의해 다양하게 구분되는데 계파와 지역에 따라 모두 다르다.


(3) 결혼


; 일부일처제로 같은 민족 간에 결혼하고 같은 마을 내에서는 거의 하지 않으며, 12세 이후 부모에 의해 정혼하나 근래에는 결혼 적령기가 많이 높아졌다. 전통적으로 친구를 동반하고 뚜이거(對歌)로 자신들의 상황을 자유롭게 전달하며 연애하는 풍습이 있어서 어린 시절부터 창(唱)을 배운다. 쌍방 간에 마음이 통한 후 중매인을 세워 결혼에 이르는 모습은 다른 민족과 다름없다. 결혼하는 과정에 찹쌀바바( 米  )가 중요한 예물역할을 한다.


(4) 명절


; 츠니엔환(吃年飯), 지동고(祭銅鼓), 음력 6월 24일에 지내는 훠바절(火把節)등 년중 매달 민속절이 있으며 연 초의 농한기에 집중되어 있는 편이다. 장례는 도교의 영향을 받아 도공(道公)들이 와 창(唱)형식의 경을 읽으며 문상객이 오면 땅에 엎드려 맞이한다


(5) 동고(銅鼓)공예


; 공예품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동고(銅鼓)가 유명한데 동고를 사용한 민족은 부이족(布依族), 동족( 族), 수이족(水族), 리족(黎族), 걸라오족(  族), 묘족(苗族), 야오족(瑤族), 투지아족(土家族), 이족( 族)뿐만아니라 베트남, 라오스, 태국, 미얀마, 말레이시아, 크메르 등 동남아의 여러 나라 민족에게도 나타나며 모두 고대에 혈연관계에 있었던 민족으로 여겨진다. 동고(銅鼓)는 원래 요리하는 도구인 동부(銅釜)에서 유래했으며 후에 두드리는 북으로 변화되었다고 하는데 출토되는 동고(銅鼓)가 연기에 그을린 흔적이 남아 있다. 동고는 신령한 수호신으로서 권위의 상징이기도 했으며 우뢰(雷)신과 태양을 혼연일체로 여기는 자연숭배사상과 관련해 그 위에 태양, 구름, 우뢰 등을 조각했다.


(6) 투스제도(土司制度)


; 투스(土司)는 족장이라는 뜻이 있으며 투스제도(土司制度)란 족장이 지배하는 사회제도인데, 족장이란 본래 자기의 부족만을 지배하게 마련인데 당시에는 정치, 경제, 군사의 모든 통치권을 갖고 주위의 약소민족을 노예로서 지배하고 착취한 통치권자로서의 성격이 포함되어 있다. 투스(土司)는 사병(私兵)을 두고 때로는 이웃 투스(土司)간에 세력다툼으로 전쟁을 하기도 했다. 투스(土司)의 심판기관은 투스아문(土司衙門)으로 투관(土官)을 최고지도자로 한다. 때로는 중앙정부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해도 규제를 심하게 가하지는 못해 횡포가 심했다. 원(元)대에는 비록 몽고족(蒙古族), 색목인(色目人; 아라비아인), 한족(漢族), 남인(南人)순으로 구분해 남부지역의 소수민족을 차별 대우하기는 했어도 현지인 가운데에서 지도자를 등용해 경영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더욱 투스제도가 활성화되어 청조(淸朝)말까지 이어졌다.


(7) 두라오졔(都老制)


; 일종의 사회제도로서 마을에 “ 두라오(都老) ”라는 원로격의 대표를 자유로이 선거로 선출해, 마을에서 지켜야할 규약을 정해 마을의 질서와 보호를 위해 일하게 한다. 부모를 공양하지 않는 자녀, 마을 공동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자, 절도, 남의 명예를 훼손하는 자, 강간 등 풍속을 해하는 자 등등에 대한 제반 업무를 처리한다.


bul2.gif 종교신앙


; 당(唐)대에 쥬앙족 지역에서 불교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커다란 영향을 끼쳤고 혼란한 시대에 민심을 붙잡기 위한 통치수단의 일환으로 종교를 이용하기도 했다. 당시의 노예제도하에서 귀신을 믿는 무속문화(巫俗文化)의 영향으로 노예주인이 신의 대리인역할을 하는데 불교는 선한 행실을 통해 누구나 수신(修身)할 수 있다고 해 흥왕 한다. 자연을 숭배해 토지신을 섬기며 70년대의 심한 기근으로 80년대에 새로이 많은 토지묘를 건립하기도 했고 거의 집집마다 선칸(神龕)을 설치해 조상을 숭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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