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의 문화적의의

작성자: 은혜님    작성일시: 작성일2017-07-04 12:18:32    조회: 381회    댓글: 0

진련산 북경대학중문계강사,다년간 중국민간문학 교수와 연구사업에 종사.주요성과들로는 "원시신앙으로부터 보는 막예투로의 합리성", "도자기, 제련, 인류제사전설을 론함"등.


음력 8월 15일은 추석인데 중추절이라고도 합니다. 1년은 열두달 춘하추동으로 나누는데 그중 7,8,9월은 가을입니다. 이것을 각각 맹추, 중추, 계추라고 합니다. 8월 15일은 가을철의 적중에 있으므로 추석이라고 부르며 또 중추시기므로 중추절이라고도 합니다 .
추석은 우리 나라의 전통적이고 오래된 명절로서 많은 민속문화활동이 망라됩니다. 례하면 추석달제를 지내고 가정단원, 월병먹기, 달구경 등입니다. 이런 민속문화활동은 일상생활의 일부분이며 동시에 깊은 문화적 의미가 내포되여있습니다.

 


추석의 력사적연원

 


추석은 달과 관련된 명절입니다. 월병을 먹든 달구경을 하든 모두 달을 에워싸고 진행되는데 그것은 추석의 제일 오래되고 본질적인 내용이 바로 달제를 지내기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추석은 달제를 지내는 명절이지요.

 


우리 나라 고대철학은 우주만물을 음양 두가지로 나누고 음양조화는 우주정상운행의 보증이라고 여겼습니다. 태양은 우주만물에서 양성사물의 최고대표이기에 태양이라고 하고 달은 우주만물에서 음성사물의 최고대표이기에 태음이라합니다. 이로부터 옛사람들은 달을 태양과 유일하게 대응되는 천체로 보았습니다.이는 인간의 마음속에서의 달의 지위가 아주 숭고하다는것을 보여줍니다.

 


우리 나라 고대력법도 달형태의 주기적변화를 달로 정했습니다. 평년은 12개월 윤년은 13개월입니다. 때문에 고대력법을 음력이라 합니다. 달이 이처럼 중요한 의의가 있기에 고대에는 달제의식이 출현했습니다. “국어”의 기재에 따르면 옛날 선왕은 천하를 얻고 상제와 일월신을 높이 모시고 숭배하였다. 이로부터 태양제와 달제가 있었고 이를 백성을 가르치는 일로 삼았다.

 


석월이란 달제의식입니다. 당시는 달제를 추분에 지냈습니다. “주례 춘관”에는 정현전은 천자는 춘분에 태양제를 지내고 추분에 달제를 지냈다고 했다 .력대 왕조들은 달제를 국가의 4전으로 삼고 엄하게 집행했습니다 .북경의 월단이 바로 명나라 가정년에 수건한 달제제단입니다. 추분에 달제를 지내는데는 우리 나라 천문력법학의 고도의 발달과 련관됩니다.

 


옛사람들의 발견에 따르면 추분이면 태양이 적도상공에 있으며 밤낮이 같고 음양이 평형됩니다. 그 후부터는 낮이 짧아지면서 해빛이 적어지는데 양기가 쇠함을 보여주며 밤이 길어지고 달빛이 많아짐은 음기왕성을 보여주며 우리 나라는 겨울에 들어섭니다. 떄문에 음양이 대등하고 양기가 쇠해지고 음기가 성한 추분에 달제를 지내면서 음기가 성한 추운계절의 도래를 맞이합니다. 춘분에 태양제를 지내면서 양기가 성한 더운 계절을 맞이하는것과 같습니다.

 


추분은 태양의 운행위치에 근거하여 확정했습니다.때문에 추분은 음력으로 보면 고정적이 아닙니다.때론 8월중순 때론 8월초 때론 8월말입니다. 만약 8월초나 말이면 둥근 달을 볼수 없는데 제사에 불길하다고 민간에서는 달제활동을 8월 중순 즉 8월 15일로 정했습니다.

 


추석의 달제민속

 


황실의 달제는 엄격한 종교활동으로서 일거일동을 상세히 규정하였습니다. 민간에서는 나름대로인데 분위기도 그리 엄숙하지 않았습니다. 민간의 달제는 복잡한 천문학, 철학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신화가 더 많았습니다. 옛사람들은 달을 신기한 천체로 여기면서 아주 큰 흥취를 가졌습니다 서한시대의 “회남자”는 월조천하 식어첨제라 했는데 뜻인즉 달에는 두꺼비가 살았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달혼으로 여겼다. 두꺼비는 달을 먹이로 간주했다. 이 신화는 옛사람들의 달형태변화에 대한 해석입니다.

 


이 두꺼비의 래력에 관해 동한시대 장형의 “령헌”에 따르면 예가 서왕모한테서 불사약을 가졌거늘 상아가 훔치고 달로 올라가서 유황한테로 갔더니 유황은 점을 쳐보고 길하다. 훨훨 날아서 홀로 서행할것이다.불길한 일을 만나도 무서워하지 말며 후에 창성할것이다. 상아는 달에 올라가서 두꺼비가 되였다 .뜻인즉 사일영웅 예가 서왕모한테서 불사약을 가졌는데 글쎄 안해인 상아가 훔쳐 먹고 무당 유황에게 자신의 운명을 물었더니 유황말하기를 명이 좋고 자손이 번성토다 했습니다.

 


상아는 홀로 달에 올라갔는데 뜻밖에도 두꺼비 모양으로 변했습니다. 알고보니 자손번성이란 두꺼비의 산란을 뜻했습니다. 다른 신화에서는 상아는 두꺼비와 무관하답니다. 상아는 해마다 적막하게 월궁에서 생활하고 동반자는 매일 약을 찧는 옥토끼뿐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옥토끼로 달을 대표했습니다.

 


고대신화에서는 또 월궁에는 계수나무가 있는데 우리가 볼수 있는 달의 음영이 계수나무의 그림자라고 했습니다.때문에 당대 시인 두보는 이런 시를 썼습니다.

 


월계수를 찍어버리면
빛이 더 밝을것이다.

 


각 지방의 달제민속은 모두 이러루한 신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명, 청 시대에 민간달제활동이 매우 류행했는데 북경 하북 하남 산동 복건 광동 등에선 모두 달제를 지냈습니다. 명대 륙계홍의 “북경세화기”의 기재에 따르면 8월 보름이면 사람들은 월궁부 즉 월광지를 사서 월궁과 옥토끼를 그려서는 뜰에 걸어 놓고 과일과 월병을 차려놓고 창공에 오른 달을 향해 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달제는 보통 녀인들이 사회하고 남성들은 회피했습니다. 그것은 달은 태음인데 남성은 양성이기때문이죠. “홍루몽” 75회에서는 용국부의 달제의식을 상세하게 묘사했습니다.

 


가음당 앞 달대에 향을 피우고 초불을 늘여놓고 과자와 과일을 차려놓았다. 형부인 등 녀객들은 안에서 기다렸다가 가모가 향을 피우며 절을 하니 모두들 같이 절하였다.

 


달제를 지낼 때 늘 흙으로 빚은 옥토끼를 월신으로 모시고 제를 지냈습니다. 이런 토끼를 북경에서는 토끼신 산동에서는 토끼왕이라고 불렀는데 모양이 아주 독특합니다. 청대 “연경세수기”의 기재에 따르면 의관을 입고 덮개를 든것 갑옷을 입고 기발을 든것 범을 탄것 묵좌한것 있는데 큰것은 3자 작은것은 한척이다.서극의 “청피류초”에서는 토끼신이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황궁에서도 토끼신에게 제를 지냈는데 황제가 국가적인 달제를 지낼 때 엄하게 제전을 준수했습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는 황제도 대중적인 민속에 좇아 달제활동을 했습니다. 복건 광동 일대에서는 달제활동을 달처녀 모시기라고 했습니다. 현존 력사기재에 따르면 월병은 대략 송대에 기원했습니다. 남송 오자목의 “몽량록”과 주밀의 “무림구사”에는 모두 월병이란 단어가 출현했습니다. 당시 월병이 보급되지 않았기에 기재가 적었습니다.

 

명대이후부터 월병이 류행되였습니다. 총적으로 민간달제활동의 종교적색채는 그리 농후하지 않았고 유희나 오락적인 분위기가 많았습니다. 례를 들어 토끼신 모양은 독특하고 익살스러운데 분명히 토끼인데 의관이나 행동거지가 사람모양이고 어떤것은 기관을 장치하여 줄을 당기면 입이 움직였는데 딸까닥 토끼신이라고 불렀으며 지금은 놀이감으로 변했습니다.


가족단원의 추석

 


중국인들로 보면 가정의 중요성은 어떻게 강조해도 과분하지 않습니다. 중화민족은 가족단원을 인생의 큰 행복으로 여깁니다. 추석의 각종 민속활동에서 가족단원의 내용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오래 된 달제풍속이 점차 식어가면서 가족단원은 추석의 새 주제로 되였습니다.

 


추석저녁의 둥근 달은 단원의 상징으로 되였고 본래는 제사에 쓰던 월병도 친구간에 서로 오가는 선물로 되여 단원의 희망을 표하였으며 따라서 단원병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모든 가정성원들은 이날에 함께 모이고 객지에 있던 식구들도 방법을 다해 귀가합니다. 친정집에 가서 부모를 뵙는 녀성도 추석날 저녁전에는 남편곁으로 와서 온 가족이 모입니다. 그래서 추석을 단원절이라고도 합니다. 이 때에 제일 슬픈 사람은 집에 가지 못하는 나그네지요. 때문에 많은 시가에서는 달빛아래에서의 귀향감정을 담았습니다.
당대시인 두보는 “8월 보름달”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만목비명경 귀심절대도
전봉행지원 반계양천고
수로의상설 림서견우모
거시첨백토 직유수추호

 


십오의 밝은 달
거울마냥 천공에 걸렸는데
물에 비낀 달빛은
이슬처럼 맑고 눈처럼 순결구나.
대지는 휘영청 밝기도 한데
수림속의 들새도
더없이 또렷구나.
시인의 마음은
벌써 장안으로 가있건만
애닯구나 .
저 먼길 떠날수 없네.

 


시에서는 상세하게 보름달의 아름다움과 장안으로 가고싶은 시인의 강렬한 념원을 묘사했습니다. 추석 저녁에 그 어떤 불행에 닥치든 온 가족이 모일수만 있다면 크낙한 행복이지요. 이날 우리는 례절에 따라 경로유애 하면서 가정인륜관계가 집중적으로 재현됩니다. 아무튼 추석은 전체 가족성원의 명절로서 모두 쾌락을 얻습니다. 마치 월병을 나눠먹을 때 사람마다 모두 한쪼각씩 차례지는것처럼 가정성원들의 모임이외 친척친우지간에도 추석에 서로 월병을 증송하면서 감정을 돈독히 합니다.

 


달구경

 


추석은 달제의 종교적인 명절뿐만아니라 또 하나의 가족모임의 륜리적인 명절이며 대자연을 흔상하는 심미적인 명절입니다. 추석의 밤은 공기가 상쾌하여 하늘을 바라보니 달이 휘영청 밝고 티끌도 없이 물처럼 고요해 원만합니다 달이 제일 아름다운 시각입니다. 이 시각 친지간에 서로 청해 달구경을 한다면 얼마나 흐뭇하고 운치가 있겠습니까.

 


달구경 습속은 유래가 깊은데 근대에 벌써 강을 누비며 달구경하는 습속이 출현하였고 당대에는 전국을 휩쓸었습니다. “개원천보유사”의 기재에 따르면 당현종과 양귀비가 추석 저녁에 태액지변에 와서 달구경을 하였습니다. 문인들은 서로 청해 달구경을 하면서 술을 마시고 시를 읊조리며 서로 화답하는데 정말 멋진 일이지요.

 


당대시인 백거의는 벗들을 불러 함께 달구경을 했으며 즉흥시로 감수를 표달했습니다. 례를 들어 백거의의 화양관중에서 8월 “보름저녁에 벗을 불러 달구경하다”에서는 이렇게 썼습니다.

 


인도추석 달 밝은데
벗 불러 달구경 어떠하리.
화양동의 추단은
금야의 달빛으로 한가득 하구나.

 


송대에는 더욱 발전했는데 맹원로의 “동경몽화록”에 기재된데 의하면 추석저녁에”귀족들은물가의 산뜻한 정자에서 달구경하고 민간에서는 달구경하려 술집차지에 법석댄다. 궁정근처 사람들은 야밤에 생황소리 듣는데 흡사 구름밖에 뜬듯하다” 고 썼습니다.

 



맹원로의 “동경몽화록”에서 이 말의 뜻인즉 추석날 저녁에 귀족들은 단구나 물가의 산뜻한 정자에서 달구경을 했고 백성들은 앞다투어 술집에 올라 달구경 하면서 음악을 듣는다. 황궁부근의 사람들은 고요한 야밤에 황궁에서 들려오는 은은한 악곡을 들을수 있었다.

 


황제도 백성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기 싫었을것입니다. 옛사람들은 추석저녁의 산보를 타팔보라 하였는데 유희성격이 이렇게 짙은것은 달구경뿐만 아닌 질병을 방지하기 위한것였습니다. “경추당잡지설”에 따르면 남북풍속에는 추석밤에 처녁총각이 산보하는데 타팔보라 하였으며 병을 쫓기 위해서다. 이 말뜻인즉 달구경은 우리 인류가 자연미에 대한 관심이며 달구경을 통해 정신생활이 아주 풍부해졌다는겁니다.

 


고대 시인들은 달구경에 대한 시가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이런 작품들은 선명하게 이 점을 명시하였습니다. 송대는 각종 시가형식이 전면적으로 발전하는 시기였는데 추석 달구경에 관한 시가 많이 출현했고 추석 달구경에 관한 문구가 많이 출현했습니다.

 


송나라 시인 소식은 달구경을 묘사한 문구를 썼는데 바로 수조가두입니다.

 


병진 추석에 밤새며 마시고 대취해
자유를 그리며 이를 쓰노라.

 


이 문구는 추석문구중 천고절창입니다.

 


명월이 언제 있었더냐, 술 들어 하늘에 묻노라.
천공궁궐의 이 밤은 어느 해던가, 바람 타고 저 달에 돌아가련다만
달궁전 너무 높아 추위가 두렵구나.
그림자와 더불어 춤추나니 인간세상 이 아닌가.
주홍루각 에돌아 창을 누비며 잠 못드는 나그네 비추네.
무슨 한이 있기에 리별의 이 밤에 둥굴어 지냐
인간은 원래 비환과 리합이 있는법, 달도 음청과 원결이 있은즉
자고로 완정무결이란 없도다.
부디 오래 살며 천리밖에서나마 함께 저 달 보기를 바라노라.

 


이 문구는 송신종 희녕9년 즉 기원 1076년에 썼는데 당시 시인은 정치배척을 받으면서 뜻을 이룰수 없었습니다. 생활도 뜻대로 되지 않으니 심정도 매우 답답하던차 추석 저녁에 외로이 술 마시며 달구경을 했는데 창공에 걸린 밝은 달이 인간세상을 환히 비추었습니다. 시인은 달빛속에 흠뻑 빠지면서 점차 진리를 깨닫게 되였습니다.바로 인간세상의 슬픔과 기쁨, 리별과 만남인데 마치 달의 음청원결처럼 자연스럽고 피할수 없고 누구든지 불행과 곤난에서 벗어날수 없다는 이 점을 깨닫고 우울하던 심정을 점차 극복하면서 정신면모가 일신되였습니다. 그는 개인의 갖가지 불행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달빛아래에서 행복하게 생활할것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아름다운 추석달은 대자연이 인류에게 베푼 은혜입니다. 달빛속에 잠기면 인류의 정신이 승화하고 령혼이 승화할것입니다.


남송의 문인 장효상은 “과동정”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소월분휘 명하공영 표리구징철 “이 말의 의미는 이러합니다. 문인 장효상이 배를 타고 천리동정에서 거닐 때 달빛속에서 우주와 문인의 내심세계는 더없이 순결하고 맑게 변했다.

 


홍루몽 76회에서 림대옥과 사상운이 요정관에서 달구경하는 대목이 있는데
묘한 리해가 있습니다. 책은 이렇게 썼습니다.

 


창공에 둥근달 두둥실 뜨자
못에도 달이 비꼈다.
상하가 다투며
정궁교실로 흘러든다. 산들바람 스치자
맑은 수면에 주름이 일며
정신이 한결 맑아진다.

 


달빛은 아릿다운 두 소녀의
정신을 맑게 했고
더불어 시흥을 돋우고
창작령감을 몰아와
"싸늘한 방에 학 그림자 스치니
차디찬 달빛 화혼을 묻네"와 같은
좋은 시구를 읊게 했습니다.

 


추석은 중화민족의 제일 미학적의의가 있는 전통적인 명절일뿐만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주요한 역할을 발휘하며 우리의 정신생활에서도 아주 특수한 지위를 차지합니다. 추석의 내용과 의의는 매우 풍부하고 심각한바 우리가 소개한 내용뿐이 아닙니다. 오늘은 이만그칩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http://baike.jlcxwb.com/bbs/board.php?bo_table=09_4&wr_id=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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