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絲部)악기-가야금

작성자: 더덜기님    작성일시: 작성일2016-12-22 09:43:37    조회: 175회    댓글: 0

 

11.jpg가야금은 거문고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현악기이다.
오동나무로 만든 울림통위에 기러기발 모양의 안족을 세우고 그 위에 명주실을 꼬아서 만든 12줄을 얹은 다음 머리 쪽에는 담괘라고 하는 것을 두어 줄을 버티고 꼬리에는 양이두를 꽂아 줄을 감아 얹어 두었다. 왼손으로 줄을 누르거나 흔들고 오른손으로는 뜯거나 퉁기면서 연주할 때의 가야금 소리는 부드럽고 아름다우며 섬세한 음색면에서 가히 일품으로 꼽는다.
이 악기는 6세기 경에 가야국의 가실왕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신라 진흥왕때에 우륵에 의해 신라에서 크게 발전하였다고 한다. 가야금에는 그 쓰임에 따라 비교적 근세에 와서 만들어진 산조가야금과 신라때부터 전하는 보다 고형의 풍류가야금의 두가지가 있다.
풍류가야금은 산조가야금보다 크기가 크고 줄과 줄 사이가 넓어서 <영산회상>, <밑도드리> 같은 정악의 연주에 적합한 반면 산조가야금은 크기가 보다 작고 현과 현사이가 좁아 <산조>, <시나위>등과 같은 빠른 민속음악을 연주하기에 적합하다.
가야금은 <가야금병창>으로도 많이 쓰이지만 <가야금산조>음악의 독주용 악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에 와서 가야금의 줄을 상·하로 추가하여 음역을 넓힌다든가 여러형태의 가야금이 개발되어 소개되고 있다.
 우륵과 가야금 
영토 확장에 여념이 없던 신라 진흥왕(AD540-576)에게 어느날 우륵이라는 사람이 찾아 왔다.
그는, 자신이 가야국 사람으로 '고'라는 12줄짜리 현악기 연주자임을 밝히고 가야국이 망해가므로 음악도 함께 없어질까봐 왕을 찾아 왔다고 사연을 아뢰었다.
진흥왕은 우륵에게 '고'의 연주를 청해 듣고 그 음악을 대악(大樂)으로 삼을 것을 결정했다.
이것을 지켜본 신하들은 망국의 음악을 받아들이는 건 옳지 않다고 반대했다. 그러나 왕은 "가야국이 망한 것은 가실왕이 음란했기 때문이지 음악 때문이 아니다"라고 하며 신하들의 반대를 물리쳤다. 그리고 우륵을 국원에 자리잡게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악기 연주와 노래 및 춤을 각각 가르치게 했다.
이로부터 이 악기는 가야국 가실왕이 만들었다고 하여 가야(얏)고 또는 가야금이라고 불리었는데 이는 신라에 있던 '고'라는 악기와 구별하기 위해서였다. 가야금은 원래 가실왕이 중국의 쟁(箏)을 본받아 만들었답니다. 또한 진흥왕 앞에서 우륵이 연주한 12곡(하가라도, 상가라도, 보기, 달기, 사물 등)도 가실왕이 명령하여 직접 우륵이 작곡한 것이다.
가야금은 일본에도 전해져 지금도 나라(奈良)의 쇼소인박물관에 '신라금'으로 보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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