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의 변천사

작성자: 최고관리자님    작성일시: 작성일2015-09-29 10:04:58    조회: 528회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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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의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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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an.jpg우리 민족의 의복은 력사 이래로 의복을 흰옷을 입어 왔다. 비록 전 인구의 극소수인 왕실, 귀족, 량반 계급은 관복으로서 오색 찬란한 비단을 입었으나, 민중의 대다수는 흰옷을 항상 입었다. 13세기 말엽으로부터 약 1백년 동안 왕실, 귀족, 특권층 일부만이 몽고의 정치적 압력하에 몽고 의복을 모방하였지만, 농민, 공인, 상인, 어민 등 대다수의 일반 민중은 항상 흰옷을 입었다. 

우리민족의 의복은 서기 14세기 경에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몰래 구입해 들여와 재배함으로써 무명에 솜을 넣은 옷을 입게 되면서 크게 발전을 이루게 되였다. 한복은 실사회 활동에 있어서 편리한 양복으로 대체되고 있지만, 개량한복과 같은 변형된 한복이 우리옷의 멋과 아름다움을 면면히 이어가고 있다. 신발은 의복과 함께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다. 현재는 운동화, 구두, 센들 등 대부분이 서구화된 신을 신지만, 우리 민족의 재래의 신에는 짚신, 삼신(미투리), 나막신, 가죽신, 헝겊신, 놋신(쇠신) 등이 있었다. 


b_arow_06.gif 한복의 변천사

우리 민족은 신석기시대에 벌써 의복다운 모양을 갖추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이 시대의 유적지인 웅기 송평동이나 김해 회현리 패총에서 골침이 발견되고 있고, 또 물레도 발견되고 있어 옷감을 짜 바늘로 꿰매는 바느질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신석기 유적에서 나온 골침은 생선뼈나 사슴의 가는 뼈에 구멍을 뚫어 만든것으로, 대략 세형침 ,대형침, 대형추침등으로 구분된다. 이중 세형침은 직물로 옷을 만들 때 쓰였을 것이고 대형침이나 대형추침은 동물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 때 이용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우리의 복식은 촌락 형성 시대를 거쳐 부족국가 시대로 오면서 의복도 어느 정도 위의를 갖추게 되었다. 

우리의 한복은 세월을 거치며 조금씩 변천을 거듭했다. 시대마다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며 길이나 넓이, 모양 등에 변화 를 보였다.이런 변화를 거치는 가운데 한복은 더욱 진수의 매력을 가다듬 게 됐다.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은 상고시대 부터 직조 기술이 발달해 마직물과 견직물을 생산했다. 신석기 시대유적지에서는 바느질에 쓰인 뼈바늘이 발견되었고 기자조 선, 삼한 등에서 누에를 길러 옷감을 짠 기록 등이 남아 있긴 하지만, 우리 옷 역사의 기원은 삼국이 성립된 시기인 약 2천년 전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엉덩이선까지 내려오는 긴 상의와 하의를 기본으로 하는 북방 계 복식이다. 상하 분할형의 북방계 복식의 특징은, 왼쪽 여밈과 좁은 소매, 통좁은 바지 등으로 이것은 추운 지역의 기마 유 목족 복장이었다. 우리 민족이 북방계 복식을 착용한 모습은 4~7세기에 조성된 고구려 고분 벽화 인물상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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