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복식사

작성자: 은혜님    작성일시: 작성일2018-03-15 14:44:53    조회: 163회    댓글: 0

저고리의 변천사

저고리는 원시시대의 관두의에서 발달하여 오늘날의 짧은 저고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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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사회의 저고리는 고분벽화를 통해서 볼때에 길이가 엉덩이까지 내려오고, 허리에 띠를 둘러 여밈을 하였다. 깃은 모두 곧은 깃이고 섶은 좌임과 우임을 볼 수가 있다. 소매는 좁고 깃, 도련, 소매 끝에 다른색의 선을 둘렀다.

『고려도경(高麗圖經)』을 통해 고려시대의 저고리는 좁은 소매에 노랑저고리를 주로 입었음을 알수 있다.

조선시대 저고리의 변천을 보면 저고리의 길이가 길던 것이 년대가 내려올수록 짧아졌고 소매는 배래선이 직선으로 되어 있었다. 수구에 넓은 끝동이 있던 것이 수구쪽을 향해 좁아지면서 곡선으로 변하고 있다.

깃은 넓고 목판깃이던 직령깃이 좁아지면서 둥글어졌다. 곁마기는 겨드랑이 아래에만 있던것이 차차 소매쪽으로 나가고 띠를 매던 것이 고름으로 변하여 가늘고 짧던것이 넓이가 넓어지고 길어졌다. 저고리의 변천에 비해 치마에는 별로 변동이 없었다.

상대사회에서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주름이 많고 긴 치마를 볼수 있는데, 의례용으로 입었음을 알수 있다. 그후의 치마에 대해서는 문헌 및 자료의 부족으로 알수가 없으나 조선시대 유물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초기에는 저고리길이가 길어서 치마의 길이가 짧았으며 후기로 올수록 저고리의 길이가 짧아짐에 따라 치마의 길이는 길어짐을 알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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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04.GIF 치마의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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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는 하의로서 량다리를 분리하지 않고 입는 옷으로 허리·끈·치마의 부분으로 구성된다.

치마라는 용어가 처음 나타난 것은 『훈몽자회』의 '쵸마'이고, 조선초기 세종때 '저고리'란 용어와 처음 사용되었다.

고려이전의 문헌자료에서는 '치마'와 상통되는 용어로는 '상(裳)'이 있다.

5607.JPG삼국시대 이전에는 군이라는 용어로 언급되어 있고, 삼국시대에는 상이라는 5608.JPG 용어로 표상과 내상으로 구분하여 썼으며,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녀인들이 착용하고 있음을 볼수 있다. 평상복은 짧은 치마를 주로 입었다. 주름이 많이 잡힌 긴 치마도 자주 보이며, 례복용 치마에는 선을 둘렀는데, 후에 스란치마로 전승되었다. 귀부인들사이에서는 색동치마가 류행됐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의 치마에 대해서는 문헌에 상(裳)과 군(裙) 이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1365∼1372년경의 공민왕릉벽화에 홀을 든 례복(조복이나 제복으로 볼 수 있다)에 남자가 치마를 착용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해인사목판에서도 긴 치마를 착용한 례가 있다.

5610.JPG5609.JPG 한국의 전통복식중에서 오랜 기간 가장 변화가 적었던 것이 치마라고 할수 있는데, 저고리길이에 따라 치마허리가 허리를 웃돌아서 가슴에 올라오게 착용되었다. 조선 초기의 치마로 안동김씨 수의치마가 있는데, 형태는 근세의 치마와 다름이 없으나 치마길이가 몹시 짧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저고리의 길이가 길었으므로 치마가 밑으로 내려온 것을 알 수 있고, 치마폭은 모두 10폭으로 전체폭의 넓이가 지금의 치마보다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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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치마로는 인조대(1623∼1649)의 남이흥 장군부인 하동정씨의 치마 2점과 영조대(1732) 현부인 전주최씨의 치마가 있다.

조선초기와 중기에는 겉치마로 솜치마, 솜누비치마, 겹치마 등을 입었으나, 후기에 와서 솜치마, 누비치마 등은 없어지고 겹치마만 입었음을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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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길이가 짧은 것은 113㎝에서 가장 긴 것은 135㎝까지로 초·중기의 것보다 많이 길어진 것을 볼수 있는데 갈수록 저고리의 길이가 짧아진 것에 대해 반대로 치마길이가 길어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5613.JPG례복용 치마로는 스란치마와 대란치마가 있는데, 이것은 치마단에 스란단을 붙인 것으로 초기에는 금사를 직금하여 짰으나 말기에는 금박을 찍어서 만들었다. 스란단을 한단 붙인것을 스란치마, 2단 붙인것을 대란치마라 하고, 스란치마는 소례복에, 대란치마는 대례복에 사용하였다. 스란단의 금박무늬는 계급에 따라 달랐는데, 왕비는 룡문, 공주· 옹주는 봉황문, 사녀(士女)는 글자와 화문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스란, 대란치마는 평상복치마보다 비단폭을 한폭 더한 것으로 넓게하고 치마보다 길이도 30㎝이상하여 땅에 끌리도록 하였다.

 

출처:http://www.korean.com.cn/index.php?document_srl=6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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