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렬사비17]양림의 묘소는 하구촌 어디메냐(1)

작성자: 은혜님    작성일시: 작성일2017-11-02 13:01:40    조회: 113회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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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우리 겨레의 홍군장령 양림이 드라마 《홍군동정》에서 주요인물의 하나로 등장하였음을 알고 있는가? 이는 진정 사실로 펼쳐지니 드라마 《홍군동정》은 중공 석루현위와 석루현인민정부, 8.1영화촬영소, 산서방송텔레비죤국 등의 련합으로 제작된 장편 중대혁명력사제재 드라마로서 2010년 12월 14일 려량시 석루현에서 첫 촬영을 시작하고 2012년 4월 6일부터 신강위성채널에서 첫 방송을 시작하였다.

《홍군동정》에서 양림의 형상은 주로 제1집과 제7집에서 나온다. 양림의 황하도하와 전투장면, 희생을 다룬 것은 제7집인데 드라마에서의 양림은 불을 뿜는 적의 또치까가 전진의 앞길을 막아나서자 서슴없이 적진으로 돌입하여 폭발꾸러미로 적의 또치까를 요정내고 장렬히 희생된다. 씨나리오작자와 드라마제작자들은 실제와 다른 이런 모습으로 양림의 희생을 처리하여 유감도 없지 않지만 드라마이니 그런대로 리해는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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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림, 리추악 부부. /자료사진

 

희생을 앞두고 양림은 맘속의 말 “추악이, 사랑해!”를 높이 웨친다. 보다 감동적인 것은 드라마는 다시 장면이 바뀌면서 황하가 산우에 양림의 무덤이 나오는 것이라 할가. 현실에서 찾을 수 없던 양림의 무덤이 드라마에서 현실처럼 펼쳐진다. 한참은 착각 속에서 진짜 양림의 무덤으로 느껴지기만 한다. 그럴 때 양림을 찾아 섬북으로 달려오던 리추악은 뜻하지 않은 남편의 무덤과 마주치며 남편의 무덤 앞에서 오열한다. 리추악은 남편이 가장 즐기던 〈아리랑〉을 부르며 그리운 추억 속에서 아리랑 춤을 춘다. 이때 양림이 꿈결처럼 나타나 이들 부부가 흥겨운 아리랑 춤으로 빙빙 돌아간다.

문학작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래도 좋았다. 나중에 양림은 가뭇 사라지고 리추악만 남는다. 그의 뒤에서는 모택동의 부인 하자진 등 한패의 동지들이 지켜본다. 드라마에서는 황하를 건넌 모택동, 장문천 등 중앙 수장들이 등장하며 마중나온 엽검영에게 모택동이 돌격대의 도하상망이 큰가고 묻는다. 엽검영은 우리 군은 두곳의 황하도하에서 수십명 동지들이 희생되였다고 하면서 “제75사 참모장 필사제동지가 불행히 적탄에 희생되였다.”고 말씀드린다. 엽검영의 회보를 들은 모택동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필사제동지는 조선인민의 훌륭한 아들입니다. 그는 피를 중국의 땅우에 뿌리였습니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황하가의 산우에 서시여 “우리는 영원히 그를 기릴 것입니다. 필사제동지여, 고이 잠드시라!”라고 하시면서 허리를 굽혀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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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현실 속에서는 찾을 수 없는 드라마 처리에 필자는 깊이깊이 감동되였다. 모택동 주석의 필사제-양림에 대한 평가는 천만지당하다. 그렇게 말씀할 수 있는 모택동 주석이다. 그러나 현실 속 장정 도중의 모택동과 중앙군위 간부퇀 참모장 양림은 그렇게 조석으로 어울리면서도 력사자료와 장정회고 자료들에서는 1934년 초 서금 중화쏘베트 제2차 대회 때를 제외하고는 모택동과 조선인 양림의 만남과 대화를 한마디도 찾을 수 없다. 이것이 오히려 유감스럽기만 하다. 그러던 유감을 현실세계의 드라마 속에서나마 볼수 있게 되니 감사한 마음이다.

《홍군동정》 드라마에서는 양림 무덤 앞에서의 리추악의 장면 장면들을 펼치다가 내레이션 처리로 바뀌면서 리추악에 대한 평가를 아끼지 않는다.

이때의 리추악은 동북의 철북지구에서 조일만과 더불어 적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건국쌍걸’이였다.

리추악은 동북으로 돌아간 후 군중들을 조직하여 기세 드높은 항일운동을 전개한다.

1936년 8월 불행히 체포되여 9월 3일에 영용히 희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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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추악렬사가 일찍 감금되였던 흑룡강성 통하현의 옛 일본헌병대부 건물 /자료사진

 

드라마에서의 양림과 리추악에 대한 평가는 실로 사람들을 고무한다. 2012년 4월 6일부터 신강위성채널을 통해 드라마《홍군동정》이 방영되기 시작한 후 강렬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그 속에서도 양림의 형상이 두드러지여 시청자들에게 주는 인상이 자못 깊은 것으로 헤아려진다. 더우기 양림의 희생을 다룬 드라마의 처리를 두고 그 관심은 보다 높아지고 있다.

양림이 동정항일의 싸움터에서 황하가에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을 때 그의 안해 리추악은 동북의 흑룡강성 통하현에서 조일만과 더불어 동북의‘흑백이리(黑白二李)’로 높이 받들리며 한창 일제놈들과 불요불굴하게 싸우고 있었다. 일찍 1934년 8월에 연수, 방정 두 현을 지도하는 중공 특별서기를 맡았던 그, 1936년 2월에 중공 통하특별지부 서기를 맡았던 그, 그러던 그는 1936년 8월 29일에 통하현에서 불행히 일본침략자들에게 체포되여 그 해 9월 3일 통하현성 서문 밖 형장에서 장렬히 희생된다. 그 남편에 그 안해였다.

필자는 어찌하여 본문의 서두부터 한동안 먼저 드라마 《홍군동정》 속 양림을 펼쳐보일가? 어찌하여 양림의 안해 리추악도 언급하여 볼가? 원인은 간단하다. 홍군장령 양림이 희생된 력사적인 황하가에 현실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양림의 묘소가 등장하고 양림과 리추악의 감동적인 만남이 황하가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다면 어찌하여 양림의 묘소를 찾을 수 없다는 걸가? 이를 알자면 2012년 7월 4일 그 날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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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5년 전 7월 4일은 정녕 잊을 수 없는 하루였다. 그 날 필자는 동행한 딸애 설이와 함께 연안을 떠나 당년 와요보회의가 열린 자장현을 찾았고 자장현에서 다시 청간현성을 거쳐 청간현성에서 50여키로메터 되는 황하가 황토고원의 하구촌을 찾았었다.

청간현성에서 하구 행은 황토고원 산정과 골안 길을 오르내리는 험한 산길이다. 바로 전날 비까지 내려 구간구간 길은 황토가 비에 씻겨내려 범벅을 이루었지만 택시운전사는 택시를 굽이굽이 잘도 몰아갔다. 황하가의 하구촌을 멀리 앞두고 신작로는 한창 대대적인 수건중에 있어서 말이 아니였다. 필자는 황하가 발아래 펼쳐지는 산언덕에서 택시를 멈춰세웠다.

산언덕 길가 굽이진 곳에 왕가하촌(王家河村)이라고 쓴 지명표시패가 박혀있었다. 마침 60대 후반 쯤 되는 로인 한분이 다리쉼을 하고 있기에 로인과 산언덕 저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 왕가하촌인가고 물으니 머리를 끄떡인다. 저 산아래 황하가에 자리한 마을이 하구촌이고 두 마을 사이 황하에 흘러드는 강이 무정하(无定河), 건너편 황하 대안 절벽 우 저쪽이 하가와촌(贺家洼村)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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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답사길에서 하구촌 건너 왕가하촌 로인을 선참 만나 /2012년 7월 4일 현지촬영

 

필자는 어언 하가와촌을 마주한 황하 대안에 서있었다. 황하를 마주하여 섰노라니 이 나라 어머니 강으로 불리우는 황하는 북에서 남으로 흘러내리며 한마리 길다란 룡처럼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강 대안인 산서땅은 모두가 현애절벽을 이루고 있어 더욱 장관이다. 그 현애절벽 우가 양림의 희생지-산서 석루현의 하가와촌이라면 황하 대안의 섬서땅 하구촌 쪽은 희생된 후의 양림이 묻힌 잊을 수 없는 고장이렷다.

력사를 펼치노라면 1936년 2월 20일 20시, 홍군 제1방면군은 동정항일에 관한 당중앙과 중앙군위의 명령을 받들고 하루 앞당겨 황하도하작전을 개시하였다. 황하도하작전의 선봉돌격 과업을 맡은 홍15군단 75사 참모장 양림은 중앙 수장들에게 “한개 련이라도 대안에 오르면 도하작전은 담보가 있게 됩니다.”라고 말하고는 제75사 223퇀 선두퇀 선두영의 장병들에게 “모주석께서 이곳으로 도하하게 됩니다. 우리는 기어이 도하의 성공을 담보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하여 지적하였다. 이에 앞서 양림은 223퇀 선두퇀 가운데서 수영에 능한 40여명으로 도하돌격대를 조직하였다.

선두퇀 선두영의 비밀도하가 시작되였다. 선두영의 40여명 돌격대가 양림의 직접 지휘하에서 황하 대안의 청간현 왕가하촌 부근에서 선참 배에 앉아 황하로 흘러드는 무정하를 따라 황하로 나아갔다. 어떤 자료들은 하구촌이라고 한다. 어떠하든 하구촌과 왕가하촌은 무정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는 마을들로서 하구촌은 황하 북안의 황하가 낮은 고장에 위치하고 왕가하촌은 황하북안의 산언덕에 위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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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두영의 배가 대안에 이르기도 전에 적들은 선두영의 움직임을 발견하고 사격을 해댔다. 양림은 비밀도하를 강행도하로 명령하고는 배사공들에게 배를 대안 기슭에 대게 한 다음 신속한 대안 쟁탈 전투로 적진을 무찔렀다. 금성철벽이라고 떠들던 황하 대안은 삽시에 아군에게 공략되였다.

양림은 계속 선두영을 지휘하여 하가와를 진공하였다. 격렬한 전투 끝에 하가와 길어구의 또치까가 박산났다. 승승장구로 적들의 중심진지를 들부시고 적 한개 련을 소멸하였다. 이때 뜻하지 않은 적탄에 양림은 복부에 중상을 입고 하가와마을에 남아 치료를 받아야 했다. 양림의 부상과 치료과정을 두고 주사제는 아래와 같이 회고하였다.

그때 나는 하구 도하사령원이고 장순청동지가 정치위원이였다… 도강 후 나는 하가와로 가서 필사제동지를 찾아보았다. 그를 전문 돌보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나와 탄알이 창자를 관통하여 상처가 아주 중하다고 하였다. 그들은 모든 방법을 다하여 구급하고 있었다. 나는 필사제동지가 넓은 구들 우에 누워있는 것을 보았다. 얼굴은 창백하였다.

이는 2월 21일 오후 홍군 제15군단 황하도하 사령원이고 양림의 ‘동갑내기’ 전우인 주사제가 하가와를 찾아 얼굴이 창백한 양림을 위문할 때의 회고이다. 아래는 그 날 주사제가 양림과 나눈 대화이다.

“전방의 형편은 어떠합니까?”

“제75사가 바야흐로 의첩진으로 진공해가고 있습니다. 짐작컨대 오늘 밤으로 의첩진을 점령할 것 같습니다. 군단부와 제78사가 의첩진 부근에 이를 것입니다. 래일이면 제75사, 제78사와 군단부가 모두 석류현에 도착할 것입니다.” “한개 련이 하가와 경계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군사위원회기관이 지금 강을 건너고 있습니다. ”

“모주석께서 건느셨습니까?”

“모주석께서 이미 강을 건넜습니다. 지금 의첩진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나는 모주석께서 도하한 후에 건너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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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림 소속 황하도하작전이 시작된 곳의 황하 /2012년 7월 4일 현지촬영

 

양림은 모주석께서 무사히 황하를 건넜다는 말에 얼굴에 기쁨을 피여올리며 주사제를 빨리 떠나라고 재촉했다. 이때를 두고 1964년 7월 13일에 쓴 회고담에서 주사제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원래 그가 누워있는 구들에 좀더 머물러있으려 하였다. 그런데 그가 나의 말을 들은 후 모든 생각을 모주석의 도하와 부대의 형편이며 의첩진의 상황에 몰부으니 조급해났다. 그가 안절부절할가 저어되여 나는 괴로운 심정을 가까스로 참으며 그와 악수하고 몸을 일으켰다.

양림의 최후 모습과 최후의 대화록이다. 그는 생명이 경각을 다투는 시각에도 모주석의 도하를 걱정했고 부대와 부대가 짓쳐나갈 의첩진을 걱정하였다.

양림과 그의 선봉영이 황하도하 작전길을 열어놓았기에 모택동과 모택동이 령솔한 홍군대오는 무사히 황하를 건너 동정항일의 장도에 오를 수 있었다. 홍군주력부대가 파죽지세로 적들의 황하방어사령부가 둥지를 튼 산서성 석루현 의첩진을 공략할 때 양림은 후방병원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날은 1936년 2월 22일이다.

2017년 5월 8일 재정리

 

출처: http://kr.chinajilin.com.cn/cxz/content/2017-05/25/content_187383.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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