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꼬마영웅 - 리학규

작성자: 최고관리자님    작성일시: 작성일2016-05-18 10:27:18    조회: 362회    댓글: 0

리학규는 1921년에 조선 경기도 룡일군 단삼동의 한 빈농의 가정에서 태여났다. 6살 때 가정을 따라 중국 길림성 이통현 류사저자툰에 이사왔다.

1930년 여름 중공 쌍양-이통특별지부가 건립되였다. 이 특별지부는 중공반석현위의 직접적인 지도를 받았는데 학규의 형님 리홍광이 조직위원 겸 지부서기를 담임하였다. 10살짜리 학규는 아동단조직에 가입하였으며 형님 리홍광의 의무통신원을 담당하였다. 
1931년 가을의 어느날, 리학규는 이통에 비밀쪽지를 전하라는 리홍광의 부탁을 받았다. 비밀쪽지를 전하려면 적의 경계가 삼엄한 200여리 길을 헤쳐가야 하였다. 학규는 생각던 끝에 수수대속을 파내고 그속에 편지를 돌돌 말아넣은 다음 파낸 속을 다시 제대로 채워넣고 수수대로 장남감총을 만들어 메고 길을 떠났다. 허리에 두른 보자기속에는 어머니가 만들어준 주먹밥이 들어있었다.
학규는 종종걸음을 쳤다. 해종일 산길을 걷다보니 발이 부르텄고 맥도 진했다. 저녁에 한 농가에 들어가 하루밤을 자고나니 힘이 났다. 사흘째 되던날 학규는 영성자거리에 들어섰다.
거리에는 군대, 경찰나부랭이들이 욱실거리면서 오가는 행인들을 까근히 검사하고있었다. 어떻게 이 고비를 넘길가 하고 한참 골똘히 생각하는데 앞으로부터 람루한 옷을 걸친 한 소년이 걸어오는것이였다.
(옳지, 이젠 됐어!)
기발한 생각이 든 학규는 다짜고짜로 그 소년을 거리바닥에 넘어뜨리고 나는듯이 달아났다.
“이자식.”
얼결에 봉변을 당한 소년은 씩씩거리며 학규를 뒤쫓았다. 보초병놈들은 아이들의 싸움이려니 여기고 보초선을 넘어가는것도 관계하지 않았다.
학규는 3일만에 이통현성에 들어섰다. 비밀련락원 조아저씨는 학규를 보고 너무 놀라 눈이 휘둥그래졌다. 글쎄 어른도 아닌 열살짜리 아이가 200여리 산길을 이처럼 빨리 달려왔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던것이다.
“넌 뉘집 아이냐?”
“난 항일아동단원이예요.”
학규의 담찬 말에 조아저씨는 너무나 기특하여 정차게 학규의 어깨를 도닥여주었다.
“9.18”사변이후 리홍광은 당조직의 지시에 의해 반석일대에 가게 되였다. 리홍광은 조직에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고 할아버지와 안해를 설복하여 조선의 고향땅으로 보내고 아버지와 어머니, 학규를 장춘으로 보냈다. 단란하던 가정은 이렇게 흩어지고말았다.
학규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학규를 데리고 장춘에 있는 조선인난민소로 옮겨앉았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장춘일본헌병대놈들은 그들이 리홍광의 가족들임을 낌새채고 학규와 그의 아버지를 끌어갔다.
헌병대에 끌려간 그들 부자간은 갖은 고문을 당했지만 종시 입을 열지 않았다. 며칠동안 고문을 들이댔지만 아무 단서도 잡지 못한 놈들은 학규에게 희망을 걸고 병원에 입원시켰다. 학규가 정신을 차리자 놈들은 사탕, 과자, 과일따위를 가득 사다주었으며 그더러 병원뜨락에서 마음대로 놀게 하였다. 어느날 헌병소좌놈이 학규를 찾아왔다.
“얘야, 너 아버지 생각도 해야잖니? 형 리홍광이 있는 곳만 대면 널 공부시켜주고 아버지 병도 고쳐주마.”
“난 모른다.”
학규의 대답에 악이 바친 놈들은 다시 그를 감방에 처넣었다.
한달이 가까웠이다. 학규의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게 되자 놈들은 학규와 아버지를 보석출옥시켰다. 학규의 아버지 병은 점점 중해갔지만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나어린 학규의 마음속에는 복수의 불길이 타올랐다.
“아버지, 난 형님을 찾아가겠어요. 유격대원이 되여 왜놈들을 쳐부시겠어요.’
이튿날 학규는 눈물을 뿌리며 아버지와 어머니 곁은 떠났다. 학규는 옹근 두달만에 형님이 거느리는 반석유격대를 찾았다. 유격대원들은 나어린 학규가 겪어온 고생살이에 무척 놀랐다.
“형님, 나에게도 총을 주세요. 나도 왜놈을 쳐부시겠어요.”
리홍광은 조용히 방안을 거닐뿐 대답이 없었다. 유격대 정위 양군무동지가 시원히 대답하였다. 양정위는 수류탄 한개를 꺼내주었다. 학규는 너무나 기뻐 퐁퐁 뛰였다. 겨우 12살밖에 안되는 학규는 끝내 소원성취하고야말았다. 학규는 남만일대에서 제일먼저 유격대에 가입한 꼬마전사로 되였다.
그해 여름 유격대는 화전현 흑석진에서 일본수비대를 습격하였다. 리홍광은 유격대를 흑석신부근의 산등성이에 매복시키고 유격대원 몇명을 보내여 놈들을 소굴에서 끌어내게 하였다. 
일본수비대가 유격대의 유인전술에 걸려 매복권내에 들어서자 유격대원들은 일제히 불벼락을 안겼다. 당황해난 놈들은 갈팡질팡하며 어쩔줄을 몰라했다.
처음으로 싸움에 참가한 학규는 저으기 겁이 났으나 적들이 하나 둘 나동그라지는걸 보고는 사기가 부쩍 올랐다. 이때 수비대 세놈이 큰길옆 숨속에 기여들어가고 있었다. 학규는 수류탄을 꺼내 심지를 빼고 힘껏 뿌렸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세놈이 단번에 황천객이 되고 말았다. 학규는 신이 났다. 싸움터를 수습할 때 학규는 뻐득거리며 악을 쓴느 일본놈을 쏘아보면서 로획한 총으로 대갈통을 내리깠다. 이날 전투에서 유격대는 일본수비대 20여명을 소멸하였다. 학규는 기마용보총을 분배받았다.
1933년 9월 반석유격대를 기초로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독립사가 조직되였다. 리홍광이 독립사 참모장(후에 제1군 제1사 사장 겸 정위)직을 맡고 학규는 사부 경위반에 편입되였다.
그해 12월 독립사는 적들이 우글거리는 류하현 고산자를 습격하기로 하였다. 학규는 기타 전사 3명과 함께 고산자정찰임무를 맡았다. 네 전사는 두개조로 나뉘여 고산자거리에 잠복해들어갔다. 손산동(별명)과 다른 한 전사는 약지으러 가는 농민차림새로 서쪽성문으로 다가가고 학규와 리할빈(별명)은 나무장사군으로 차리고 동쪽성문에 나타났다.
“섯! 뭘 하러 가는거냐?”
보초병놈이 길을 막아나섰다.
“나무를 팔려고요.”
18살에 난 리할빈이 나무지게를 가리키며 제꺽 대답했다.
“공산비적이지?”
두 보초병놈은 그들 둘을 세워놓고 참빗질을 했으나 아무것도 들춰내지 못했다.
“허허, 아무것도 없잖아요? 이제 나무를 팔고 올 때 술을 사다드리지요. 돌아갈때 꼭 이리로 지나니깐요.”
리할빈이 굽석 허리를 굽히며 능청을 부리자 학규도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가라!”
두 보초병놈은 시끄럽다는듯 꽥 소리지르고는 다른 행객들을 검사하기 시작하였다.
거리의 으슥한 골목에 이른 학규와 할빈은 나무단속에서 권총을 뽑아 품에 지니였다. 그들은 헐값으로 나무를 팔아넘긴후 적들의 포대와 병영위치, 군호 등을 일일이 알아냈다.
겨울해근 노루꼬리처럼 짧았다. 어느새 땅거미가 어둑어둑 지기 시작하였다. 네 전사가 선후로 서쪽성문에 이르렀다.
“손들엇! 소리치면 죽인다.”
그들은 일제히 보초병에게 달려들어 총을 몰수하고 옷을 벗겨낸 다음 꽁꽁 묶고 입에 자갈을 물려 담모퉁이에 처박았다. 이때 적 패장놈이 다가와 반장이 어디 갔는가고 웨쳤다. 변복을 한 손산동이 공산군 두놈을 잡아놓았다고 보고하자 패장놈은 대번에 헤벌쭉해졌다. 패장놈이 다가와 묶이운 사람을 보려고 허리를 굽힐 때였다.
“꼼짝말앗!”
학규가 벼락같이 달려들어 패장놈의 권총을 빼앗았다. 이때 성문밖에서 대기하고있던 전사들이 성문을 두드렸다. 학규네는 인차 성문을 열고 정찰한 정황을 알려주었다. 전투는 한시간 남짓이 지속되였다.
리학규는 부대내에서 이름이 났다. 그는 선후하여 60여차의 전투에 참가하여 솜씨를 보였다. 독립사 지휘원들과 전사들은 학규를 “꼬마홍광”이라 친절하게 불렀다. 
1934년말에 있은 한차례 전투에서 학규는 적탄을 맞고 불행히 희생되였다. 그때 학규의 나이는 겨우 13살밖에 안되였다. 사랑스러운 꼬마전사를 잃은 독립사 전사들은 슬픔속에 잠기였다. 그들은 비통을 힘으로 바꾸어 원쑤를 족치기 위한 새로운 싸움터에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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