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항일영웅 - 리옥금

작성자: 최고관리자님    작성일시: 작성일2016-05-18 10:11:14    조회: 178회    댓글: 0

리옥금은 1922년에 훈춘현 하다문향 일송정에서 태여났다. 1930년 하반년에 일송정에도 중국동산당지부가 성립되였다. 옥금이의 아버지와 삼촌들은 진작 혁명에 나선 투사들이였다. 이런 가정에서 태여난 옥금이의 어린 가슴에도 혁명의 씨앗이 움트기 시작하였다.

1932년 5월부터 훈춘의 하다문일대에 대한 일제의 토벌이 날로 심해졌다. 그리하여 일송정의 당조직과 혁명력량은 심한 손실을 받았으며 부득불 연통라자일대로 전이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마을의 30여세대 남녀로소와 함께 연통라자동골로 가는 길에 옥금은 불타고있는 고향마을을 돌아보며 종주먹을 불끈 쥐였다.
연통라자동골에 이르자 공산당원인 아버지와 부녀회책임자인 어머니는 군중들을 안치하고 조직을 묶어세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동단 단장인 오빠도 보초와 통신 등 일에 바삐 보내다보니 두 동생을 보는 일은 옥금이에게 차례졌다. 자존심이 강한 옥금이는 자기를 한낱 코흘리개로 보는 것이 더없이 불만스러웠다.
어느날 오빠는 또 아동단모임이 있다면서 일어섰다. 옥금이도 따라나섰다가 꾸중만 들었다. 옥금이는 오빠가 나간 틈을 타서 오빠의 붉은텍타이와 곤봉, 포승을 꺼내서 제법 아동단원차림을 하였다. 옥금이의 차림새를 본 아버지와 어머니는 싱글벙글 웃으시면서 “옥금이가 오늘은 제법 아동단원이 되였구나.” 하시면서 기분을 돋구어주었다. 때마침 전투를 끝낸 유격대아저씨들이 동골에 들리였는데 모두가 번쩍이는 총들을 메고있었다. 어느새 총에 마음이 끌린 옥금이는 유격대아저씨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재잘거렸다.
“아저씨, 이 총은 왜놈들한테서 빼앗은거겠죠?”
“그러찮구. 이 총이 바로 3.8식보총이라는거다.”
“야! 참 대단하네요.”
옥금이는 환성을 울리면서 자기도 왜놈을 족칠 테니 총쏘는 요령을 배워달라고 졸라댔다. 유격대아저씨즐은 령리한 소녀의 청을 흔연히 받아들였다. 잠간사이에 사용법을 익힌 옥금이는 신이 나서 입으로 총소리를 내며 야단이였다.
“땅! 따땅!”
옥금이는 한동안 복색판을 피우며 돌아다녔다. 아동단원이 되여 지난해 봄에 왜놈들한테 잡혀간 둘째삼촌과 셋째삼촌의 원쑤를 갚겠다고 윽별렀다. 그러더니 어느날엔가 박달나무를 찍어다 곤봉을 만드느라 씩씩거렸다.
“여간내기가 아닌데. 인줘, 내가 만들어주마.” 
보초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오빠가 옥금이앞에 척 나서며 능청을 부렸다.
“싫어. 나절로 만들래.”
옥금이는 돌아앉아 부지런히 칼질을 해댔다.
“곤봉을 해서는 뭘 하려구?”
“아동단원이 될려구요.”
“곤봉만 가지면 아동단원이 되는줄 알아? 무엇보다 먼저 아동단원이 지켜야 할 열가지 조목을 알아야 해.”
오빠는 옥금이한테서 나무와 칼을 빼앗아 곤봉을 잘 다듬으면서 말했다.
“열가지 조목이란게 뭐야?”
“그것도 모르면서 아동단원이 되겠다구?”
오빠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실현을 위해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도리로부터 아동단의 구호, 보초서기, 통신련락 등에 이르기까지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1932년 가을 옥금이는 아동단기앞에 나섰다. 오른주먹을 추켜들고 입대선서를 하는 옥금이의 어린 가슴에는 새희망이 불타올랐다. 조직에서 준 붉은넥타이와 곤봉, 포승 이 3대무기를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잃지 않겠다고 굳게 다졌다.
옥금이는 아동단 분단장이 되였다. 작달막한 키에 영채도는 눈, 야무지게 생긴 몸에 포승줄을 멋지게 차고 손에 박달나무곤봉을 척 든 옥금이의 모습은 제법 꼬마투사다왔다. 옥금이는 조직에서 맡겨주는 보초, 정찰, 통신 등 과업을 훌륭히 수행하였고 밤이면 야학교에 가 글도 배우고 혁명가요도 배웠다.
1933년의 어느날, 유격대에서는 관도구에 긴급히 전해야 할 쪽지를 옥금이에게 주었다. 긴급과업인데다가 길이 멀고 또 그것도 범이 출몰하는 밀림속을 밤도와 갔다와야 하였다. 허나 조직에서 주는 과업이라고 생각하니 옥금이의 발걸음은 날개라도 돋친듯 가벼웠다. 옥금이는 다른 대원들과 함께 그날 밤으로 통신과업을 원만하게 수행하였다.
옥금이는 또 아동단원들을 이끌고 보초근무를 섰는데 수상한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날카로운 눈총을 박았다. 하여 놈들의 밀정을 잡은것만 하여도 10여명이나 되였다.
1933년 12월 중순의 어느날 저녁무렵이였다. 일제의 토벌대가 별안간 굶주린 승냥이떼마냥 양징거우로 덮쳐들었다. 귀청을 째는듯한 아츠러운 기관총련발소리가 어둠이 깃든 마을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옥금이도 마을사람들의 뒤를 따라 피난길에 나섰다.
“아차, 이 정신 봐!”
옥금이는 가슴이 섬찍해났다. 아동단원의 3대무기인 붉은넥타이, 곤봉, 포승을 집에 두고 왔던것이다. 그는 생사불구하고 눈길을 헤치며 집에 이르렀다. 옥금이가 붉은넥타이랑 가지고 문을 나서니 마을에는 벌써 일대 소동이 일어났다. 적들의 꽥꽥거리는 소리와 저벅거리는 구두발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왔다.
피할수도 없는 순간이였다. 옥금이는 집뒤의 통나무가 놓인 곳으로 기여가 붉은넥타이랑 파묻고 감쪽같이 자취를 메워버렸다. 옥금이가 금방 자리를 뜨자 허리에 군도를 찬 일본놈장교가 군견을 앞세우고 그의 앞에 나타났다. 장교놈이 통역과 뭐라고 말하자 통역놈이 징글스러운 웃음을 낯에 게바르고 옥금이앞에 다가왔다.
“마을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느냐?”
“난 몰라요.”
“이 마을에 공산당이 몇이 있느냐?”
“공산당원이야 많고 많지요. 당신 좀 정신차려요. 왜놈을 할애비모시듯하다간 살아 돌아가려니 생각말아요.”
왜놈을 한없이 증오하는 옥금이는 통역놈의 낯판대기에 침을 탁 뱉었다.
“뒈질년 죽여버리고말테다.”
통역놈은 앙칼지게 소리쳤다.
“이 개놈아, 죽일테면 죽여라. 네놈도 조선사람이냐?”
옥금이는 으드득 어금이를 갈았다. 분이 상투밑까지 오른 통역놈은 왜놈장교한테 문초정황을 통역해주었다. 서슬이 퍼래진 왜놈장교는 군도를 쑥 뽑아들더니 옥금이의 왼쪽무릎을 콱 찔렀다. 그리고도 성차지 않아 오른쪽다리도 총창으로 두번이나 찔러놓았다. 삽시에 선지피가 콸콸 흘러 땅우의 눈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옥금이는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며 원한에 찬 눈길로 원쑤들을 쏘아보았다.
“네놈들이 나를 죽일수 있어도 우리 사람들을 다 죽일수는 없다. 네놈들이 망할 날이 꼭 오고야말것이다.”
옥금이는 드디여 피못에 쓰러졌다. 
이윽고 왜놈토벌대가 물러갔다. 마을사람들이 달려왔을때에는 옥금이가 인사불성이 되여 타버린 집앞에 쓰러져있었다.
정신을 차린 옥금이는 첫마디에 아동단의 3대무기를 파달라고 간청하였다. 사람들의 손에서 붉은넥타이와 곤봉, 포승을 받아쥔 옥금이는 그것들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러는 옥금이를 본 마을사람들은 저마다 눈시울을 붉혔다. 이번 토벌에서 옥금이네 일가식솔 7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그날 저녁 옥금이는 모진 동통에 시달렸다. 이튿날아침 조직에서는 옥금이를 국경선가까이에 자리잡은 근거지병원에 호송했다. 열흘이 지났다. 옥금이의 상처는 차츰 아물어갔다. 병원의 아저씨들은 옥금에게 맛나는 음식을 해주었다. 하지만 옥금이는 한사코 먹지 않고 남겼다가는 중상자들한테 주었다.

1934년 옥금이는 근거지병원에서 양력설을 맞았다. 연통라자구위에서 병문안을 온다는 소식에 접한 옥금이와 상병들은 몹시 기뻤다. 그런데 바로 그날 저녁에 적들의 토벌대가 병원을 물샐틈없이 포위하였다. 21명의 부상자들은 한사람같이 일떠나 완강하게 싸웠지만 중과부적으로 모두 장렬하게 최후를 마쳤다. 그때 옥금이는 12살을 잡은지 하루밖에 안되는 나어린 소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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