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우사>와 윤극영

작성자: 최고관리자님    작성일시: 작성일2015-10-29 15:58:20    조회: 299회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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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jpg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그루 토끼 한마리
… …
  이 동요는 우리 겨레들이 누구나 다 익숙히 알고 있으며 애창하고 있는 동요 《반달》이다. 이 《반달》을 작곡, 작사한 윤극영선생은 1903년 9월 6일에 서울에서 출생하였는데 그에게는 룡정이란 이름과 떼여 놓을수 없는 연분이 있다.

  윤극영선생은 1921년에 경성법학 전문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하고 일본의 동양음악학교에서 바이올린과 성악을 학습하였다. 그는 1923년 3월에 방정환이 조직한 《색동회》에 조정호 등 여러 동지들과 함께 참가하여 조선어린이들의 예술개척사업에 몸을 담그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같은 해에 서울에 돌아와 그 이듬해인 1924년 8월에 《다알리아회》라는 어린이합창단을 조선에서 처음으로 창단하면서 열심히 아동가요 창작활동을 떠밀고 나갔다. 그 당시까지만 하여도 조선에는 우리 어린이들이 부를 동요가 없었고 있다면 모두가 일본어린이들의 동요뿐이였다. 그리하여 1924년 10월 12일에 윤극영선생이 작사, 작곡한 우리 민족 어린이들의 첫 동요 《반달》이 창작되였다. 뒤이어 그는 《고드름》(유지영 작사), 《할미꽃》(박팔양 작사) 등 유명한 동요곡을 창작하였으며 1926년에는 동요곡집 《반달》을 출판하였다. 이해 윤극영선생은 간도의 문화발상지인 룡정으로 오시여 룡정의 동흥중학교, 광명중학교, 광명녀고에서 교편을 잡고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쳤다.

  1927년(민국 16년)에 윤극영선생은 룡정에서 음악교학을 하는 한편 《예우사》를 꾸리고 민족음악창작을 추진하면서 잡지 《예우》까지 창간하여 민족음악과 가요창작에서의 넓은 길을 열어놓았다. 이때에 그는 윤석중선생이 작사한 《제비남매》, 《우산 셋이 나란히》, 《고기잡이》, 《외나무다리》 등 많은 동요를 작곡하였다.
윤해영 작사, 조두남 작곡으로 된 《룡정풍경가》도 《예우사》의 영향으로 창작되였는데 이 가요에서는 반일사상정서를 구김없이 반영하였으며 들끓는 반일의 시대정신을 반영하였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만 그의 창작열정은 룡정살이 10년에 변함이 없었다. 윤극영선생은 1936년에 룡정을 떠나 재차 일본으로 건너가 음악공부를 하고 1940년에 흑룡강성 할빈에 가서 예술단을 조직하였으나 얼마 안되여 해산되고 말았다. 그후 그는 10여년 때가 묻은 룡정으로 다시 돌아와 운수업에 종사하였다…
풍운의 조화는 가늠할수 없다고 1946년에 윤극영은 체포되여 룡정에서 투쟁을 받고 사형에 처하게 되였으나 민족의 얼을 지닌 유명한 작곡가임을 안 공산당간부 문정일이 그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그리하여 그는 1947년에 청진을 거쳐 서울로 돌아가 계속하여 어린이들을 위한 민족예술사업을 하여 1983년에 국민훈장 《모란상》을 수여받았다.

  그는 1988년 11월 15일에 서울에서 별세하였다. 그러나 그의 《반달》, 《할미꽃》과 같은 동요는 오늘날까지도 룡정사람들이 애창하고 전 민족이 애창하는 동요로 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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