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황제> 라운규

작성자: 최고관리자님    작성일시: 작성일2015-10-29 15:54:58    조회: 190회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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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jpg  조선영화발전사를 펼치면 20세기 20년대에 조선반도를 매료시킨 유명한 영화 《아리랑》이 있다. 그것은 당시 조선민족의 고난사를 진실하게 반영하여 민족의 웅어리진 가슴을 흔들어 놓은 영화였다.
이 《아리랑》의 주역은 조선영화사에서 뚜렷한 자리를 차지하는 라운규이며 예술생애에서 혁혁한 성과를 올린 라운규이다.

  라운규는 1902년 10월 27일 조선 함경북도 회령군의 한 동의의원의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1916년에 회령보통학교에서 신흥고등소학교에 진학하였으며 졸업하기전 봉건적인 조흔을 반대하여 분연히 집을 뛰쳐나와 화룡현 지신구(현재 룡정시 지신진)에 있는 명동학교에서 공부하였다.  1919년에 조선으로 돌아가 력사적인 《3.1》운동에 참가하였다.

  《3.1》운동후 라운규는 북만일대와 연해주일대를 류랑하다가 1920년에 조선으로 돌아갔으나 일제경찰에 체포되여 2년간 청진감옥에서 옥살이를 하였다. 이 감옥생활은 라운규의 정신적성장을 촉진하였으며 이때로부터 모순에 찬 현실을 맞받아 나가리라 작심하였는데 바로 이때에 그의 대표작 《아리랑》이 구상되였다.
라운규의 예술활동은 그가 1923년에 일본인이 관리하는 부산 《조선키네마》의 연구생으로 들어간 다음부터 시작되였다. 그가 영화예술계에 들어선 때로부터 1926년 그의 처녀작 《아리랑》을 창작하기까지의 기간은 영화예술가로서의 준비기라고 말할수 있다. 이 기간에 라운규는 주로 영화배우로 활동한 한편 씨나리오 수업과 영화연출 수업을 하여 예술적 기량을 쌓았다.

  이렇게 예술적으로 완성된 그는 《아리랑》의 뒤를 이어 윤백남(尹白南)의 감독아래 《운영전》의 단역을 맡았고 리경손(李慶孙)연출로 된 《심청전》과 《개척자》,《장한몽》,《산체왕》 등의 주역을 맡았으며《조롱속의 새》에서는 학생역까지 맡았다.
라운규는 영화에서의 배우였을 뿐만아니라《풍운아》,《사랑을 찾아서》, 《들쥐》,《왕녀》,《오몽녀》,《안녕히》,《종로거리》,《7번지의 골목사건》,《무화과》,《그림자》,《강건너마을》 등과 같은 영화작품들을 세상에 내여 놓았다. 그는 1937년 8월 9일에 페결핵으로 36세의 아까운 나이로 사망하였으나 조선의 영화사와 룡정땅에는 그의 자취가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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