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소설가 김창걸

작성자: 최고관리자님    작성일시: 작성일2015-10-29 15:52:15    조회: 322회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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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김창걸은 1911년 12월 조선 함북 명천군에서 태여났다. 7세때에 부모를 따라 룡정시 지신진 명동촌에 이주하여 거기서 명동학교를 다녔으며 15세에 룡정 은진중학교에 입학하였다.

  1927년에 학교당국의 종교교육을 반대하는 동맹휴학에 참가한후 당시 맑스주의 영향이 깊이 미쳤던 대성중학교 전학하였다. 그는 학교에서 사회주의사상의 영향을 받아 지하혁명활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그후 집살림이 어려워 학비를 낼수 없어 퇴학하고 집에 돌아와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이면 야학에서 글을 가르쳤다. 한편 혁명단체의 중견이 되여 선전활동을 하다가 혁명조직의 지시에 따라 돈화에 가서 지하비밀간행물 《맑스주의》 와 속보 《선봉》의 등사임무를 맡아 하였다.
1934년 집에 돌아와 농사를 짓다가 소학교 교원, 점원, 사무원 일을 하면서 문필활동에 투신하여 많은 작품을 창작하였다.

  이 시기에 발표한 단편소설은 제재와 주제가 다양하고 민족적이며 향토적인 색채가 진한 것이 특징적이다. 그의 대표작 《얌야》에서는 잔인하게 인민의 고혈을 빨아내는 악착한 지주계급과 억울하게 수탈당하는 빈곤한 농민들간의 갈등과 투쟁을 통하여 식민통치하에서의 불합리한 현실을 신랄히 폭로하였으며 1930년대 농촌에서 흔히 목격하게 되는 청년농민 명손의 형상을 성공적으로 부각하였다.
김창걸선생은 1936년부터 1943년사이에 단편소설 20여편을 썼고 그외 많은 시, 수필 등을 창작하였다.

   해방후 연변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소설, 희곡, 시조, 평론문장을 썼으며 《시경》, 《홍루몽》의 번역사업과 《한조사전》, 《조선어속담사전》의 편찬사업에도 참가하였다.

김창걸선생은 중국작가협회 회원이며 연변문련 부주임, 연변작가협회 리사, 주정치협상회 상무위원 등 직을 맡고 있다가 1985년부터 집에서 만년을 보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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