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장령 최현

작성자: 최고관리자님    작성일시: 작성일2015-10-29 15:49:15    조회: 1,072회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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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현은 1907년 6월 8일 훈춘시의 홀루투거우라는 자그마한 마을에서 최화심의 장남으로 태여났다. 최현의 본명은 최득권이였다. 어린 시절 최현은 신식학교가 없는 마을형편에서 아홉살 때 구학서당에 다니다가 훈장과 맞서는 바람에 몇달만에 그만 두었다.

  최현의 어린 시절 그의 고향에서도 반일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었다. 특히 반일의병운동에서 가장 활약하였던 홍병도, 임병국 부대가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어린 최현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더욱이 홍범도, 임병국 부대에서 반일운동에 종사하고 있던 아버지는 일찍부터 반일민족주의사상으로 최현을 교양하였으며 결국은 최현으로 하여금 열한살 어린 나이에 반일운동에 뛰여들도록 이끌어 주었다.
당시 최현의 집에는 홍범도, 임병국 등을 비롯한 반일부대의 간부들이 거의 매일과 같이 드나들었으며 그들은 최현을 매우 귀여워하고 아껴주면서 그에게 권총 다루는 법도 배워주고 말 타는 법도 가르쳐주어 장차 왜놈들과 싸울수 있는 기능을 키워주었다. 최현도 그들을 매우 흠모하고 따르면서 반일부대사이의 통신련락을 다니였는데 번마다 임무를 훌륭하게 완성하였으며 그의 아버지는 최현에게 호신용으로 권총까지 주면서 통신련락임무를 맡기군 하였다.

  1942년, 최현은 쏘련에 있는 누이네 집에 갔다가 그곳 인민들의 참된 생활모습을 보고 뜻깊은 이야기들을 듣는 가운데서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맑스-레닌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하여 더욱 많은 인식을 가지게 되였다. 고향에 돌아온후 윤창범의 소개로 1925년초에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진보적인 청년조직인 《동만청총》에 가입하였다. 당시 최현은 각지 조직 상호간의 련락을 책임졌다. 그는 동지들과 함께 대중적인 집회를 소집하여 혁명의 도리를 선전하고 삐라도 찍어 살포하고 경제모연도 하였다.
허나 얼마 안 지난 1925년 11월, 최현은 당지의 한 지주집에 가 경제모연을 한 관계로 윤창범과 같이 군벌당국에 체포되여 무기도형을 받고 연길감옥에 갇히게 되였다. 그러나 그 몸서리치는 감옥생활도 그의 의지를 꺾지는 못하였다. 그는 이 감옥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더욱 완강하게 혁명활동을 벌리였다.

  최현은 우선 감방안에서 다른 《죄수》들에게 혹형을 가하는 《깡툴》이라는자와 맞서 싸워 그놈의 기염을 꺾어놓음으로써 많은 《죄수》들의 신임을 얻었다. 최현은 죄수들에게 혁명의 도리를 선전하고 그들을 단합하여 감옥당국과 투쟁하였다.
1932년 7월, 군벌정부의 《대사령》에 의해 6년형으로 감형된 최현은 드디여 출옥하여 항일무장투쟁의 새로운 려정을 시작하였다.
최현은 출옥한 길로 연길현 태양촌에 있는 적위대에 가입하였다. 8월, 그는 윤창범, 방전준과 같이 고급관리로 변장해가지고 연길현 소동구의 두 지주집을 습격하여 총 다섯자루를 탈취하여 적위대를 무장하였다.

  1932년 10월, 최현은 로투구에 있는 연길현유격대에 입대한후 유격대의 성장을 위하여 계속 무기탈취투쟁에 나섰다. 그는 동무들과 같이 적의 자위단을 습격하여 총 8자루를 탈취하였으며 연길시 주변에 있는 지주집을 습격하여 또 총 두자루를 로획하였다.

  1932년 10월 12일, 연길현유격대가 로투구에서 왕우구로 이동하던 도중 차조구 분수골에서 최현은 박동근대대장과 리영찬정위의 소개로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왕우구에 온후 그는 유격대 1중대 1소대 정치부 소대장으로 임명되였으며 1934년 봄에는 중대장으로 임명되였다. 이 기간 최현은 대동구 자위단습격전투, 왕우구유격근거지 반 《토벌》전투, 왕우구부근에서의 지위단습격전투, 해란구에서의 위만군습격전투, 구룡평공안국습격전투, 명월구골짜기에서의 자위단습격전투, 의란구유격근거지 방어전투, 삼도만에서의 왜군습격전투, 팔도구시가지점령전투 등 수십차의 전투를 성공적으로 진행하여 적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으며 유격대의 자금과 군수물자를 해결하고 기관총 등 무기를 구입하는 등의 여러가지 어려운 임무를 번마다 훌륭하게 완성하였다.

  최현은 유격대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인민들의 생명재산의 안정을 위하여 온 정력을 다 바쳤다. 따라서 연길현유격대를 비롯한 각 현유격대는 신속히 발전, 장대해졌고 1934년 3월에는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제1동립사로 편성되였으며 연길현유격대를 제1동립사 제1려단으로 재편성되였다.
1935년말, 최현은 2려단 3중대 중대장으로 임명되였다. 장기간의 간고한 전투생활속에서 최현은 우수한 항일장령으로 성장하였다.

  1936년 3월,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은 안도현 미혼진에서 동북항일련군 제2군으로 개편되고 최현은 1사 1려단 려단장으로 임명되였다. 이해 여름 동북항일련군 제2군은 또 남만의 제1군과 련합하여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을 편성하였으며 최현은 4사 1려단의 려단장을 담임하였다.
1936년 11월중순, 최현은 부대를 거느리고 무송현에서 소탕하남산저격전투에 참가하여 육박전으로 눈부신 전과를 이룩하였다.

  1937년 3월하순, 최현은 4사 정위 주수동과 함께 4사 1려단과 6사 9려단을 거느리고 안도, 화룡 방면으로 진군하였다. 4월초, 안도에 이른 그들은 황구령고개에서 안도진으로 물자를 운송하는 적의 량식대를 습격하여 대량의 량식과 물자를 로획하였다. 5월중순, 최현은 부대를 거느리고 간고한 행군끝에 두만강을 건너 조선 무산에 이르러 직접 붉은바위총습격전투를 지휘하였다.
1937년 6월, 최현의 부대는 장백현 13도구의 간상봉에서 왜군 제19사 제74련대와 격전을 벌려 많은 적들을 소멸하고 전투의 승리를 취득하였다.
1938년 봄, 최현은 로금창부근에서 적 토벌대 한개 영을 저격하여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1939년 3월, 최현은 부대를 거느리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화전 목기하목재소를 습격하여 왜군 20여명을 몽땅 소멸하였으며 위만삼림경찰대 경좌 리해산을 처단하고 100여명의 위만경찰을 포로하였다. 이어 4월에는 다른 부대와 련합하여 화전현의 군사요지 다부차이허를 점령하고 적 200여명을 섬멸하는 대승리를 거두었다.
1939년 6월, 최현은 부대를 거느리고 돈화현 우정자에 진군하였다. 때마침 적들이 사람을 파견하여 투항을 권고하므로 이 기회를 리용하여 대량의 물자를 탈취하고 투항을 권고하러 온 왜군장교 4명을 처형하였다. 이어 최현은 부대를 거느리고 천보산에 진격하여 광산과 시가지를 점령하고 광산사무소와 상점을 들부시여 많은 돈과 물자를 탈취하였으며 군중대회를 소집하여 대중들에게 항일구국의 도리를 선전하고 죄악이 큰 왜놈을 체포하여 공개처단하였다.

  1939년 7월, 최현은 제13려단 려단장을 담임하였다.  
그해 8월, 항일련군 제1로군 제3방면군은 안도현 대사하진을 공격하여 진을 지키고 있던 적들을 몽땅 소멸하였으며 증원하러 온 적미야모드 《토벌대》도 몽땅 소멸하고 적 군용렬차 8대를 불살라버렸다. 그후 제3방면군은 돈화로 진군하여 한총령에서 돈화로부터 남하하는 마쯔시마 《토벌대》를 습격하여 적 200여명을 소멸하고 군용자동차 11대를 소각하였으며 기관총 등 무기를 로획하였다.

  1939년 겨울, 제3방면군은 적의 동기 《토벌》을 분쇄하기 위하여 려단을 단위로 분산활동 하였다. 최현은 13려단을 거느리고 연길, 왕청일대에서 집단부락을 들이치고 위만삼림경찰대와 조우하였으며 그후 안도로 돌아와 한총령, 황구령 등지에서 적들을 타격하였다.
1940년후 동북항일련군의 처경은 더욱 곤난해졌지만 최현은 더욱 견강한 의지로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이해 여름, 그는 왕청현 라자구일대에서 활동하면서 십리평습격전투 등 많은 전투를 진행하여 적들을 타격하였다.

  1910년말, 최현이 거느린 제13려단은 기타 항일련군부대들과 마찬가지로 중쏘변경지구에 이동하여 쏘련경내에 군사훈련기지를 건립하였다. 항일련군의 활동도 소부대활동으로 넘어가 수명내지 10명좌우의 소조단위로 조선국내와 동북 각지로 류동하면서 적들을 기습하고 적들의 군사시설을 파괴하는 등 군사, 정치 활동을 위주로 하였다. 최현은 상급의 지시에 따라 선후 여러 차례 연길, 왕청, 안도, 돈화, 화전등지로 들어가 소부대활동을 진행하였다.

  1941년 여름, 최현은 10여명으로 된 소부대를 거느리고 왕청 라자구와 연길현 삼도만 일대에서 3개월간이나 노력하여 임무를 원만히 완성하였다.
1942년 4월에도 최현은 소분대를 거느리고 연길, 돈화 일대에 와 군사정찰활동도 하고 인민대중을 발동하기도 하면서 반년간이나 간고하게 분투하여 임무를 승리적으로 완성하였다.
이렇듯 최현은 동북항일련군의 걸출한 지휘원으로서 견인분발하고 용왕매진하는 정신으로 왜적이 투항할 때까지 줄곧 반일무장투쟁을 견지하였다.
1945년 8월, 일제가 투항하자 최현은 전우들과 함께 조선으로 나갔다.

그는 1982년 4월 9일에 평양에서 서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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