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

작성자: 최고관리자님    작성일시: 작성일2016-05-16 11:21:26    조회: 256회    댓글: 0

조선시대(1504-1551) 연산군때의 녀류예술가. 본관은 평산(平山)임. 시임당/임사재로도 불린다.


사임당의 아버지는 명화(命和)이며 어머니는 용인이씨(龍仁李氏)로 사온(思溫)의 딸이다. 사임당은 조선시대의 대표적 학자이며 경세가인 이이(李珥)의 어머니이다. 사임당은 당호이며 당호의 뜻은 중국 고대 주나라의 문왕의 어머니인 태임(太任)을 본받는다는것으로서 태임을 최고의 녀성상으로 꼽았음을 알수 있다. 외가인 강릉 북평촌(北坪村)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 명화는 사임당이 13세때인 1516년(중종 11)에 진사가 되였으나 벼슬에는 나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기묘명현(己卯名賢)의 한 사람이였으나 1519년의 "기묘사화"의 참화는 면하였다. 외할아버지 사온이 어머니를 아들잡이로 여겨 출가후에도 계속 친정에 머물러 살도록 하였으므로 사임당도 외가에서 생활하면서 어머니에게 녀범(女範)과 더불어 학문을 배워 부덕(婦德)과 교양을 갖춘 현부로 자라났다.
서울에서 주로 생활하는 아버지와는 16년간 떨어져 살았고 그가 가끔 강릉에 들를 때만 만날수 있었다.

19세에 덕수이씨 (德水李氏) 원수(元秀)와 결혼하였다. 사임당은 그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아들 없는 친정의 아들잡이였으므로 남편의 동의를 얻어 시집에 가지 않고 친정에 머물렀다. 결혼 몇달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친정에서 3년상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갔으며 얼마뒤에 시집의 선조때부터의 터전인 파주 율곡리에 기거하기도 하였고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백옥포리에서도 여러해 살았다. 이따금 친정에 가서 홀로 사는 어머니와 같이 지내기도 하였으며 셋째아들 이이도 강릉에서 낳았다.
38세에 시집살림을 주관하기 위해 아주 서울로 떠나왔으며 수진방에서 살다가 48세에 삼청동으로 이사하였다. 이해 여름 남편이 수운판관(水運判官)이 되여 아들들과 함께 평안도에 갔을때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사임당이 지향한 최고의 녀성상은 태임으로 그녀를 본받는다는 뜻으로 당호를 지었는데 사임당을 평한 사람들중에는 그의 온아한 천품과 예술적 자질조차도 모두 태임의 덕을 배우고 본뜬 데서 이루어진것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이이와 같은 대정치가, 대학자를 길러낸 훌륭한 어머니로서의 위치를 높이 평가한것이다.
그러나 사임당은 완전한 예술인으로서의 생활속에서 어머니와 아내의 역할을 성숙시켰던것이다.
사임당이 교양과 학문을 갖춘 예술인으로서 성장할수 있었던 배경은 그의 천부적인 재능과 더불어 그 재능을 발휘할수 있도록 북돋아준 좋은 환경이 있었기때문이다. 사임당의 재능은 그가 7세에 안견(安堅)의 그림을 스스로 본따 그렸다는데서 찾아볼수 있다.
또 사임당은 통찰력과 판단력이 뛰어나고 예민한 감수성을 지녀 예술가로서 대성할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거문고 타는 소리를 듣고 감회가 일어나 눈물을 지었다든지 또는 강릉의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운것 등은 그녀의 섬세한 감정이 남다르다는것을 보여주는것이다.

사임당의 그림, 글씨, 시는 매우 섬세하고 아름다운데 그림은 풀벌레, 포도, 화조, 어죽(魚竹), 매화, 난초, 산수 등이 주된 화제(畵題)이다. 마치 생동하는듯한 섬세한 사실화여서 풀벌레그림을 마당에 내놓아 여름볕에 말리려 하자 닭이 와서 산 풀벌레인줄 알고 쪼아 종이가 뚫어질뻔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글씨로는 초서 여섯폭과 해서 한폭이 남아 있을뿐이다. 이 몇조각의 글씨에서 그녀의 고상한 정신과 기백을 볼수 있다.

신사임당은 네 아들과 세 딸을 진정한 사랑으로 키웠으며 어릴때부터 좋은 습관을 가지도록 엄격한 교육을 하였다. 사임당의 자애로운 성품과 행실을 이어받은 7남매는 저마다 훌륭하게 성장하여 모두들 인격과 학식이 뛰어났다. 사임당의 자녀들중 그의 훈로와 감화를 제일 많이 받은것은 셋째 아들 이(珥)이다. 이이는 후에 그의 어머니 사임당의 행장기를 저술하였는데 그는 여기에서 사임당의 예술적 재능, 우아한 천품, 정결한 지조, 순효(純孝)한 성품 등을 소상히 밝혔다. 사임당은 실로 현모로서 아들 이이는 백대의 스승으로, 아들 이우(李瑀)와 큰딸 이매창(李梅窓)은 자신의 재주를 계승한 예술가로 키웠다.

신사임당은 뛰여난 예술가인 동시에 높은 덕과 인격을 쌓은 어진 부인으로, 또 훌륭한 어머니로서 우리민족 녀성의 모범이 되여 존경을 받고 있다.
작품으로 시 "사친"과 그림 "산수도", "자리도", "초충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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