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인

작성자: 최고관리자님    작성일시: 작성일2016-05-16 11:18:46    조회: 118회    댓글: 0

왕인(王仁)

백제 근초고왕때의 학자. 화이길사(和邇吉師)/조고주(照古主)로도 불린다.

근초고왕때는 백제가 융성하던 시대로 문화도 대단히 발달하였다.
이때 아직기(阿直岐)가 근초고왕의 지시로 말 두필을 끌고 일본에 건너가서 일본왕에게 바친뒤 말을 기르는 일을 맡아보았다. 아직기가 경서에 능통함을 안 일본 오진왕(應神王)은 태자 토도치랑자(兎道稚郎子)의 스승으로 삼았다.

아직기가 임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 일본왕은 아라타(荒田別) 등을 보내여 근초고왕에게 학덕높은 학자를 보내주기를 청하였다. 근초고왕은 왕인을 추천하여 "논어" 10권, "천자문" 1권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게 하였다. 왕인은 일본왕의 태자 토도치랑자의 스승이 되였다.

왕인은 경서에 통달하였으므로 일본왕의 요청에 의해 군신들에게 경사(經史)를 가르쳤다. 그의 자손들은 대대로 가와치(河內)에 살면서 기록을 맡은 사(史)가 되였으며 일본조정에 봉사하여 일본 고대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왕인은 일본에서 생애를 마쳤는데 오늘날 일본의 아스카문화의 기초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의 력사책 "고사기 古事記"에는 왕인의 이름을 화이길사(和邇吉師) 또는 백제국왕 조고주(照古主)라 하였고 "일본서기 日本書紀"에는 "와니(왕인)"으로 기록되여 있다. 그리고 "고사기"에는 백제 근초고왕때의 사람으로 기록되여 있으나 "일본서기"에는 아신왕 말년경에 일본으로 건너온것처럼 기록되여 있어서 전후 30∼40년간의 차이가 있다. 우리민족력사에는 전혀 왕인의 이름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이후 백제로부터 일본으로 오경박사(五經博士)를 비롯하여 재봉녀(裁縫女), 직공(織工), 야공(冶工), 양주자(釀酒者), 도공(陶工), 안공(鞍工), 화원(畵員), 금공(錦工), 의사 등이 건너가서 백제문화를 일본에 전하여 일본의 고대문화발달에 공헌하였다.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에는 왕인석상을 비롯하여 왕인이 독서하였다는 "왕인책굴", 제자들이 스승의 모습을 바위에 새긴 "왕인석굴", 일본으로 떠날 때 정든 고장을 떠나기가 아쉬워 몇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는 "돌정고개", 왕인이 배를 탄 "상대포" 등이 있으며 무덤은 일본 대판(大阪)과 경도(京都)의 중간지점인 히라카타(枚方)에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