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전쟁제2절 토지개혁

작성자: 최고관리자님    작성일시: 작성일2016-04-13 15:21:57    조회: 1,429회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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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o20.jpg1946년 5월 4일, 중공중앙에서는 "청산, 감조 및 토지문제에 관한 지시"("5.4"지시)를 내렸다. 동북 각지의 조선족집거지역들을 비롯한 근거지들에서는 당중앙의 "5.4"지시에 따라 기세드높은 토지개혁운동을 일으켰다. 

연변지구의 토지개혁은 세개 단계를 거쳐 진행되었다. 

b_arow_08.gif첫째 단계는 1946년 7월부터 같은해 12월까지었다. 이 단계의 임무는 농민들을 광범히 발동하여 한간, 주구를 청산하고 감조감식을 실시하며 농회를 건립하는것이었다. 이 시기에 중공길림성위원회, 길동분성위원회, 각 현위원회의 800여명 공작대가 농촌에 내려가 운동을 지도하였는데 그중 500여명이 조선족간부들이었다. 이단계에서는 농민대중들이 광범히 발동되었고 농회가 건립되었으며 "공지분배"를 비롯하여 "4.6", "3.7"의 감조감식을 진행하여 농민들의 식량곤난을 해결하였다. 

b_arow_08.gif둘째 단계는 1946년 12월부터 1947년 6월까지었다. 이 단계의 중심과업은 대중을 보다 더 폭넓게 발도함으로써 지주의 토지를 몰수하여 농민들에게 분배하여 봉건세력을 철저히 짓부시는것이었다. 토지개혁공작대는 "견결히 빈고농에 의거하고 중농을 단결하여 지주를 타격하자"는 투쟁방침에 따라 빈고농을 핵심으로 하는 빈고농단을 조직하여 지주를 투쟁하고 토지를 나누는 투쟁을 벌렸다. 연길현 세린하의 손영명, 훈춘 마천자의 한희삼, 룡정의 남군필, 화룡의 리영춘 등 한간, 주구와 악질지주들이 투쟁을 받고 청산되었다. 

b_arow_08.gif셋째 단계는 1947년 7월부터 1948년 4월까지었다. 이 단계의 임무는 둘째단계에 존재한 문제들을 찾고 대중을 가일층 발동하여 봉건세력을 철저히 짓부시고 농민들의 토지요구를 철저히 만족시키는것이었다. 이 단계에서는 회억대비의 방법으로 낡은 장부를 따지고 농민들의 계급각성을 한걸음 더 제고하며 반동지주에 대한 새로운 투쟁을 벌렸다. 이리하여 반동지주들의 "검은 토지"와 감추어둔 총, 식량과 재산들을 파내여 몰수하였다. 

토지개혁운동을 거쳐 조선족농민들은 토지의 주인으로 되였다. 토지개혁의 승리로 하여 로농동맹과 민주정권이 보다 더 튼튼해졌고 민족단결이 강화되였으며 생산이 발전하고 전선원호사업이 한걸음 더 활발히 벌어지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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