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전쟁제5절 연변인민민주정권의 건립

작성자: 최고관리자님    작성일시: 작성일2016-04-13 15:20:23    조회: 2,608회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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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o17.jpg1945년 8월 항일전쟁의 승리는 동북 각 민족인민들로 하여금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그러나 항일전쟁승리후의 동북 및 전 중국의 형세는 매우 복잡하여 조선족은 또 한번 준엄한 고험을 맞이하게 되였다. 당시 국민당은 항일전쟁의 승리의 과실을 탈취하기 위하여 미국의 방조하에서 동북의 중요한 대도시와 남만지구를 강점하여 이 지구의 조선족으로 하여금 또다시 국민당통치하에 빠지게 하였다. 따라서 국민당은 종래로 중국에 소수민족이 존재한다는것을 승인하지 않았으며 동시에 청조와 봉계군벌의 민족압박과 멸시정책을 계승하여 정치적으로 민족동화정책을 실시하고 경제적으로 잔혹한 착취와 략탈을 감행하였다.

특히 조선족에 대하여 이미 중국 동북에서 약 한세기동안 살아오면서 동북변강을 개발하고 여러민족 인민과 공동으로 일본제국주의의 침략과 식민통치를 반대하여 싸운 사실을 승인하지 않았다. 동시에 조선족을 일본의 중국침략의 앞잡이로 간주하고 적화(赤化)의 화근으로 보아 엄격하게 조선족을 단속하고 제한하였다. 그들은 강제로 조선족의 토지와 재산을 몰수하고 조선족을 박해하고 구축하였으며 조선족의 문화교육사업을 파괴하였다. 이리하여 조선족은 국민당의 독재통치에서 벗어나고 민족자치를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국민당의 통치를 뒤엎고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수립하여야 하였다. 

1945년 일본이 투항한후 연변의 조선족인민의 혁명열정은 매우 높아 조선족선진분자들은 각종 군중조직을 결성하고 지방질서의 안정을 책임졌다. 9월 19일 연변 각지에서 온 로동자, 농민, 청년, 부녀동맹의 대표 600여명은 연길에서 대표대회를 소집하고 연변로농청총동맹을 설립할것을 결정하고 강령을 제정하고 집행위원회를 선거하여 연변 각지의 로동자, 농민, 청년운동을 통일적으로 지도하였다. 그들은 "인민을 주체로 한 정권을 수립하고 중조인민의 단결과 우의를 공고히 하기에 힘쓰며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를 쟁취할것"을 주장하였다. 

10월 26일 그들은 중공연변위원회의 령도하에서 제3차확대회의를 소집하고 총동맹을 연변민주대동맹으로 재조직하였다. 연변민주대동맹은 지희겸이 위원장을 담임하고 그 아래에 총무, 조직, 선전, 청년, 부녀 등 기구를 두었으며 아울러 "연변민주대동맹강령"을 제정하였다. 강령에서는 "전중국민주련합정부를 건립하고 동북 각지인민의 자치정부를 건립하며 각 현, 성의 국민회의를 민주선거하고" 또 "언론, 출판, 집회 등의 자유와 남녀평등"과 "민족문화를 발전시키고 교육을 보급"할것 등을 주장하였다.

동시에 각항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여 각지에 기층조직을 결성하여 연길, 화룡, 훈춘, 왕청, 안도 등 5개현에 민주대동맹현본부를 설립하고 구와 촌에는 지부와 소조를 건립하였는데 맹원이 145,000여명에 달하였으며 그중 조선족이 137,000여명에 달하였다.

민주대동맹의 각급조직은 당의 기층조직 및 민주정권이 정식으로 건립되기전 민주선거를 통하여 연길, 화룡, 왕청, 훈춘 등 4개현에서 촌, 구, 현의 임시행정기구를 건립하였으며 민정을 관리하고 생산을 조직하였으며 교육을 발전시키고 교통을 회복하며 난민을 구제하고 군중을 발동하여 한간(漢奸)주구를 청산하는 투쟁도 벌렸다. 또 인민무장도 건립하였는데 6개퇀의 병력을 조직하고 자치군이라 불렀다. 이리하여 민주대동맹은 일정하게 민주정권의 역활을 하였다.

1946년 7월 민주대동맹은 각급민주정권이 건립됨에 따라서 자기의 력사적사명을 완수하고 해체하였다. 

이와 동시에 중국공산당은 연변의 각민족인민을 지도하여 민주정권을 건립하는데 착수하였다. 1945년 11월 20일 연길에서는 연변인민대표대회를 열어 간도임시정부를 해산하고 연변정무위원회를 선거하였다. 또 길림성 연변행정독찰전원공서를 건립하고 아래에 민정, 재정, 문교, 농림, 총무 등과 공안국 등 기구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정식으로 연길, 화룡, 왕청, 훈춘현정부를 건립할것을 결정하였다. 이리하여 연변에서는 중국공산당이 지도하는 진정한 인민민주정권이 수립되여 조선족은 진정으로 사회의 주인이 되였으며 처음으로 평등하고도 합법적인 사회정치지위를 누리게 되였다. 연변정무위원회는 사업을 더욱 잘하기 위하여 시정방침을 제정하였는데 "민주정치를 실행하여 인권, 재권,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다. 농공상업을 회복시키고 생산을 발전시키며 가렴잡세를 경감한다. 신민주문화를 실행하여 낡은 문화교육을 페지한다. 민족단결과 민족평등을 실행하여 중한민족의 정치, 경제, 문화평등을 보장한다"고 규정하였다. 이는 정부가 인민이 진정으로 주인이 되는 정권임을 표명한것이였다. 

그밖에 인민해방전쟁이 승리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남북만 각지 조선족집거지구에서도 모두 련이어 인민민주정권을 수립하였다. 

이리하여 이 시기 연변의 각급당조직 및 정부기구중에는 모두 일정한 비례의 조선족간부들이 있었는데 통계에 의하면 1949년 연변각급 인민정부중 조선족간부는 75.5%를 점하였으며 연길현은 81.9%에 도달하였다. 중공연변지위와 전원공서의 제일서기와 부분적전원들은 모두 조선족이였다. 조선족이 소수인 남만지구에서도 각급인민정부를 조직하고 인민대표를 선거할 때 조선족간부와 대표의 비례를 고려하였으며 흑룡강성에서는 성, 현, 구급간부중 조선족이 900여명에 이르렀으며 각현에 민족과를 설치하여 조선족의 내부사무를 처리하였다. 勃利縣 江麗區, 鷄西縣 鷄村區, 尙志縣 河東區 등 곳에는 250여개의 조선족인민의 행정촌을 건립하였는데 이런곳의 당정간부는 기본적으로 모두 조선족이 담당하였다. 동북행정위원회도 1948년 4월 민족사무처를 설치하고 주덕해를 처장으로 임명하여 조선족사무를 처리하게 하였다. 이는 조선족의 참정권이 충분하게 보장되였음을 의미하는데 정치상에서 조선족의 민족자치의 실현을 위하여 조건을 닦아놓았다. 

조선족인민은 경제상에서도 민족평등권을 누려 토지개혁에서 조선족, 한족을 불문하고 일률적으로 토지를 평균분배하여 조선족으로 하여금 처음으로 토지의 진정한 주인이 되게 하였다. 통계에 의하면 연변의 조선족만도 94,000여호에 443,000여명의 농민이 127,000여쌍의 토지를 분배받았다. 기타 지구의 조선족들도 토지개혁을 통하여 모두 토지를 획득하였다. 이리하여 조선족은 경제상에서 철저한 해방을 실현하여 조선족의 생활안정과 조선족경제의 자주적인 발전을 위한 조건을 창조하였을뿐만아니라 민족자치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조건인 토지소유권을 해결하였다. 

이 시기 조선족은 또 민족문화교육활동을 촉진하는 운동을 광범하게 전개하였다. 중국공산당은 일관하게 소수민족의 문화교육의 발전을 존중할것을 주장하였다. 1946년 연변전원공서 부전원 董昆一은 元旦의 "新年獻辭"에서 "우리의 정부는 민족평등의 원칙에 근거하여 조선족으로 하여금 정치, 경제, 문화상에서 해방과 발전의 권리를 향수하게 하며 민족의 언어, 문자, 풍속습관, 종교신앙 등도 일률로 존경을 받는다"고 강조하였다. 조선족은 중국공산당의 소수민족의 언어, 문자를 존중하고 발전시킨다는 방침정책에 따라 민족교육방면에서 민족의 언어, 문자교육을 견결히 관철하였다. 

당과 정부의 지지하에서 조선족지구의 교육은 신속하게 발전하여 1946년 연변 5현의 소학교는 위만주국시기의 313개소로부터 365개소로 증가하였으며 동시에 중등교육도 발전하여 위만시기의 14개소로부터 1년이 못되는 사이에 각 현, 향, 진에 모두 중학교를 건립하였다. 또 길동군정대학과 연변민주학원을 설립하여 해방전쟁과 토지개혁을 위하여 대량의 조선족간부와 교원을 배양하였다. 4년간의 발전을 통하여 1949년 동북3성의 조선족중학교는 70개소로 되였으며 학생은 16,000여명, 소학교는 1,500개소, 학생 180,000여명에 이르렀다. 또 4개소의 사범학교도 있었다. 특히 연변의 조선족교육은 큰 발전을 가져와 1949년 위만주국시기에 비하여 150여개소의 학교가 증가되고 학생은 15,000여명이 증가되였다.

1949년 4월 조선족의 문화교육수준을 더욱 제고하고 조선족자신의 고급인재와 간부를 양성하기 위하여 당과 동북인민정부의 지지하에서 조선민족대학-연변대학을 건립함으로써 중국조선족교육의 소학교로부터 대학에 이르는 완전한 교육체계의 건립을 실현하였다. 동시에 조선족의 문학, 예술, 방송, 신문, 출판 등 문화사업도 신속한 발전을 가져와 자주적으로 민족문화교육을 발전시키기 위한 리상을 초보적으로 실현하였다. 

총괄적으로 해방전쟁시기 조선족은 중국공산당의 지도하에서 적극적으로 인민민주정권을 건립하고 충분하게 참정권을 행사하였으며 토지개혁운동과 생산을 회복, 발전시키는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따라서 민족문화교육을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정치, 경제, 문화교육의 자주적 발전을 초보적으로 실현함으로써 민족자치의 실현을 위한 조건을 창조하고 경험을 축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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