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전쟁제4절 쏘련홍군의 진격과 일제의 페망

작성자: 최고관리자님    작성일시: 작성일2016-04-13 15:19:33    조회: 919회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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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o16.jpg쏘련은 1945년 8월 8일에 대일선전포고를 내리고 8월 9일에 동, 서, 북 세갈래로 나뉘여 동북에 출병하였다. 팔로군도 명령을 받고 동북으로 진출하였다. 영웅적조선족인민들은 쏘련홍군과 팔로군의 동북진출에 배합하여 여러가지 투쟁을 벌렸다. 

1941년부터 전개된 항일련군 소부대활동은 이미 쏘련홍군의 출전에 많은 유리한 조건을 마련해주었다. 일본군의 병력배치, 방어시설 및 여러 면의 정보는 이미 소부대활동을 통하여 진작 쏘련홍군에 장악되여 있었다. 그러나 일본군의 최후발악은 쏘련홍군의 작전에 매우 큰 장애를 가져다주었다. 이때 계속 소부대활동을 견지하던 항일련군전사들은 갖은 방법으로 쏘련홍군의 진공에 편리를 마련해주었다. 

1945년 8월초, 항일련군 소부대의 김명주 등 5명은 훈춘현 마적달부근에서 국경선을 넘다가 적을 만나 싸우게 되였다, 전투에서 김명주는 오른쪽 어깨에 총탄을 맞고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그는 전우들과 함께 계속 적정을 정찰하여 쏘련홍군의 진군로선을 확정하고 상급에 보고함으로써 출병조건을 마련해주었다. 그들은 류수하자에서 쏘련홍군을 만나 길을 안내하여 계속 전진하였다. 항일련군전사 려영준은 임무를 맡고 목단강지대에서 활동할 때 지상에서 무선전으로 쏘련홍군 비행기에 적의 목표물을 지시하여 폭격의 명중률을 담보하였다. 그리고 어떤 소부대들은 당지의 군중들을 조직하여 무장시킨후 쏘련홍군과 배합하여 일본군을 쳐부셨다. 동만으로 진공하는 쏘련홍군부대마다에는 항일련군내의 조선족대원들이 끼워서 통역과 길잡이들을 하였다. 뒤이어 항일련군 주력부대도 쏘련홍군과 함께 동북에 진군하여 일제침략군과의 최후의 싸움을 벌렸다. 

관내에서 활동하던 조선의용군에서도 동북의 항일사업을 위하여 일찍부터 간부를 동북에 파견하였다. 해방후 조선의용군 제3지대 지대장으로 된 김택명은 1943년에 "조선독립동맹"의 파견을 받고 흑룡강성 파언현 조선족집거지에 온후 그곳에서 대중을 조직하면서 비밀사업을 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투항하자 이들은 쏘련홍군에 배합하여 여러가지 투쟁을 벌렸다. 1944년에 심양에 파견된 팔로군 기열료군구의 조선족간부(조선의용군전사었음) 한청은 일제가 투항하자 8월 18일에 심양에서 조선의용군 독립지대를 조직하였다. 이 독립지대는 일본군잔여세력을 소멸하고 지방의 사회질서를 유지함으로써 쏘련홍군의 출병작전에 배합하였다. 

관내의 팔로군부대들이 동북으로 진군하던 도중에 부대내의 조선족장병들은 일본군잔여세력을 소멸하는 전투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당시 산해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있는 하북성 옥전현에는 일본군 3천여명과 괴뢰군 2천여명이 주둔해있었는데 놈들은 동북으로 진군하는 팔로군을 가로막고 있었다. 아군은 적정을 정찰하기 위하여 조선족인 참모 주영훈 등을 현성안에 파견하였다. 정찰자료에 근거하여 부대는 새로운 작전방안을 짜고 성을 공량하는 전투를 시작하였다. 4시간의 치렬한 전투를 거쳐 옥전현성을 해방하고 수천명의 적을 포로하고 수많은 무기들을 로획하였다. 이 전투에서100여명의 조선족전사들이 희생되였다. 뒤이어 산해관에서 7.5킬로메터 떨어진 구문관에서 아군은 3,000여명의 일본군과 2,000여명의 괴뢰군이 수비하고 있는 적들의 방어시설을 맹공격하여 적 125명을 살상하고 3,800여명을 포로하였으며 중소형포, 박격포, 중기관총을 포함한 많은 무기들을 로획하였다. 이 전투에서 조선족전사 남창석은 적 40여명을 살상하였다. 그리고 이 전투에서 수많은 조선족전사들이 귀중한 생명을 바쳤다. 

이밖에 동북경내의 조선족들은 자발적으로 조직되여 쏘련홍군의 출병작전에 배합하였다. 1945년 8월 12일, 룡정의 박근식, 강동주 등 5명은 비밀리에 "쏘련홍군환영위원회"를 조직하고 김치움에서 쏘련홍군을 환영하는 삐라를 조선문과 한문으로 등사하여 그날밤으로 중심거리에 붙여놓았다. 8월 15일, 일본천황의 무조건항복을 선포하는 방송을 들은 "환영위원회"는 비밀활동으로부터 반공개적인 활동에로 넘어가 쏘련홍군이 19일에 룡정에 입성할 때까지 활동하였다. 목단강시에 거주하는 조선족들은 "고려인민협회"를 결성하고 군중들을 조직하여 "항일련군개선환영대회"를 가졌다. 

동북경내의 조선족들을 비롯한 여러 민족 인민들의 분발된 투쟁의 배합으로 하여 쏘련홍군은 출병하여 며칠이 되지 않아 전 동북을 점령하고 일제의 동북통치에 종말을 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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