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전쟁제1절 공산주의사상의 흥기와 발전

작성자: 최고관리자님    작성일시: 작성일2016-04-13 15:17:43    조회: 443회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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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o13.jpgb_arow_06.gif 공산주의사상의 흥기
1905년부터 1920년 사이에 조선족인민들은 주로 본 민족 민족주의단체의 령도밑에서 반일투쟁을 벌렸다. 그러나 민족주의단체 지도성원들의 계급적제한성으로 말미암아 민족주의단체들은 반봉건투쟁구호를 제기할수 없었다. 하여 그들은 봉건적 억압과 착취에서 시달리는 조선족인민들의 대다수를 리탈하게 되였으며 철저한 반일투쟁을 벌려나갈수 없었다. 그리고 민족주의자체의 협애성으로 하여 민족주의단체들은 중국땅에서 반일투쟁을 하면서도 중국의 여러 민족 인민들과 단결할줄 몰랐다. 력사는 민족주의단체들이 조선족대중운동을 승리에로 이끌수 없다는것을 립증하였다. 

1921년부터 1930년 사이에 조선족인민들은 주로 조선공산주의단체들의 령도밑에 보다 기세높은 반일투쟁을 일으켜 많은 희생을 내면서 영용히 싸웠다. 그러나 조선공산주의단체들은 중국땅에서 조선족인민에 의거하여 반일투쟁을 하면서도 "조선혁명연장론"만 견지한데서 맑스주의를 중국조선족실제에 결부시킬수 없었다. 우선 조선족인민들에게 반봉건투쟁구호를 내놓지 못하였으며 "1차혁명론"의 영향밑에 반일폭동에만 정력을 기울이다보니 조선족대중운동은 거듭되는 실패를 보게 되였다. 력사는 조선공산주의단체들도 중국조선족대중운동을 승리에로 인도할수 없다는것을 실증해주었다. 

장기적이며 곡절적인 투쟁을 거쳐 조선족인민들은 본민족의 해방을 위한 투쟁은 세계약소민족 특히는 중국인민의 혁명투쟁과 밀접히 부합되여야 한다는 도리를 점차 깨닫게 되였다. 조선족인민의 철저한 해방은 일제를 타도하고 조선의 독립만을 전취해서 되는것이 아니라 동북에서 자기들을 통치하고 압박하며 지어는 제국주의와 결탁하여 여러 민족인민들을 압박착취하는 중국의 봉건주의와 봉건착취제도를 뒤엎어야 하며 반제반봉건투쟁의 승리는 반드시 중국의 여러민족 인민들과 련합하여야만 실현될수 있는것이였다. 이리하여 1930년 3월부터 중국의 조선공산주의자들은 국제공산당의 "일국일당"의 조직원칙에 따라 원래의 조직들을 해산하고 개인의 신분으로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이때로부터 조선족인민들은 중국공산당의 령도밑에 중국혁명에 직접 참가하여 제국주의, 봉건주의 및 관료자본주의를 때려엎는 투쟁에 적극 뛰여들었다. 

b_arow_06.gif 공산주의사상의 발전
조선족집거지역에서의 맑스주의전파는 1920년대초부터 시작되였다. 일찍 로씨야 사회주의10월혁명에 참가하였거나 그 영향을 받은 조선조기공산주의자들이 쏘련의 원동지역에서 공산주의단체를 결성하였으며 그후 "경신년대토벌"때 로씨야의 씨비리지구로 철거하였던 조선족선진청년들도 당지에서 맑스주의를 접수하였다. 

1920년에 조기공산주의자 리동휘, 박진순 등은 국제공상당대표들과 함께 상해에 가서 급진적인 조선민주주의자들에게 로씨야사회주의혁명의 경험을 소개하고 맑스주의와 로농혁명사상을 선전하였다. 이리하여 그들의 영향밑에 북경, 상해 등지의 조선족들가운데서 맑스주의단체들이 련이어 조직되기 시작하였다. 1921년 5월, 리동휘 등은 상해에서 인쇄소를 꾸리고 맑스주의서적들을 조선글로 출판하였다. 쏘련 원동지역의 조선인맑스주의단체들에서도 많은 혁명서적을 발행하여 조선족집거지역들에 전파하였다. 이리하여 1922년부터 맑스주의와 사회주의사조는 연변 및 동북 각지의 조선족집거지역에서 신속히 전파되였다. 

조기공산주의자들은 각지에서 민족주의단체들을 련합하고 반일무장조직들을 재건하는 동시에 동양학원, 로동학원 등을 창설하여 조선족청년학생들에게 맑스주의를 전수하였다. 특히 1923년에 룡정 동양학원에서는 공산주의 선전부와 특별부를 설치하여 맑스주의와 사회주의혁명사상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대중사업을 활발하게 벌려 선진청년들을 양성하였다. 그리고 영신, 대성, 동흥 등 학교들에서는 "사회과학연구회", "학생친목회"와 "독서회"등 맑스주의연구단체를 조직하고 맑스주의를 선전하였으며 학생들을 조직하여 "종교와 교육의 분리"운동을 벌려 학교에서의 종교의식을 페지하고 선진적인 교직원들로 조직된 학교위원회가 학교를 관리하게 하였다. 

조기공산주의자들의 영향밑에 신속히 성장한 조선족선진청년들은 각지 대중속에 심입하여 맑스주의와 사회주의혁명사상을 선전하였으며 맑스주의단체와 혁명군중단체를 조직하였다. 1922년에 화룡현 평강 장흥동에서 림민호를 비롯한 동흥중학교 학생들은 "동구청년회"를 조직하고 여러가지 문체활동을 벌리면서 맑스주의를 선전하였다. 연변의 기타 현들에서도 청년단체들이 앞다투어 조직되었다. 1926년 1월, 연변각지 청년단체들의 대표회의가 룡정에서 소집되었다. 이 회의에서 전 연변지역의 청년들을 통일적으로 령도하는 "동만청년총동맹"이 세워졌다. 

1924년부터 1927년 사이에 연변의 청년조직들에서는 선후로 리동광, 리민환, 리희연 등 20여명 선진청년들을 길림동남지역과 류하, 청원, 영길 등지의 농촌에 파견하여 조선족들속에서 맑스주의와 사회주의사상을 선전하고 "한족동향회(韓族同鄕會)"와 각종 청년단체들을 조직하게 하였다. 1924년 11월 반석에서 길림, 돈화, 반석, 화전 등지의 청년회가 련합하여 "남만한인청년총동맹"을 결성하였으며 1925년 11월에는 중동철도연선의 철령하에서 "북만로력청년총동맹"이 결성되였고 1926년 5월에 아성현에서 중동철도연선 각 청년단체대표회의가 열려 "북만조선인청년총동맹"이 세워졌다. 

각지 조선족청년조직들에서는 청년들을 광범히 단결하여 야학을 꾸리고 운동회와 문예활동을 통하여 대중들을 동원하고 조직하였으며 혁명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공산주의사상의 온상"으로 불리운 룡정의 대성, 동흥 등 중학교의 학생들은 혁명조직의 지도밑에 농촌에 내려가 야학과 식자반을 꾸리고 신문화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맑스주의혁명사상을 선전하였다. 

20년대초부터 조기공산주의자들과 혁명청년학생들의 노력밑에 맑스주의는 연변을 비롯한 동북조선족집거지역에서 재빨리 전파되었다. 지어 일제도 "적색의 세찬 물결이 끊임없이 간도에 밀려들고 있다. 대다수 민족주의자들까지도 공산주의에로 기울어지고 있다."고 비명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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