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사제4절 이주시기의 력사년표

작성자: 최고관리자님    작성일시: 작성일2016-04-13 15:09:51    조회: 291회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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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8월, 백두산 분화. 

1677년         청조는 간도에 대한 봉금령을 내린다. 

1688년         4월, 백두산 분화. 

1702년         4월, 백두산 분화. 

1712년         중국과 조선 량국은 압록강, "土門江"을 국경으로 할것에 합의. 백두산에 정계비를 세운다. 

1859년         혼춘 협령을 부도통협령(副都統協領)에 승격. 

1860년         청-로가 “북경조약”을 체결. 우스리강동쪽, 도문강 북쪽의 토지를 로씨아에 할양(현재의 연해주). 청은 일본해에의 출구를 잃는다. 

1869년         전에 없던 기아에 의해 조선인이 연변에 유입. 

1875년         청은 서간도의 봉금정책을 페지. 렬강의 만주접근에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통화현에서 조선인이 벼농사에 성공. 

1881년         청은 간도에서 봉금정책을 페지. 청은 조선에 대해서 간도지역 조선인의 송환을 요구. 

1882년         청은 입적령을 발포해 조선인의 귀화를 권유. 

1883년         조선은 두만강봉금령을 페지. 집안에 밀정으로 들어간 사까와 카게노부는 광개토왕비의 탁본을 일본에 가지고 돌아간다. 

1884년         조선의 종성으로부터 개산툰을 거쳐 룡정에 이르는 도로가 부설. 길림성은 조선과 "상민무역 지방규정"을 맺고 상부지를 지정하고 무역을 자유화한다.

1885년         을서담판. 청은 봉금령을 전페하고 월간국을 마련해 조선이민에 의한 개간을 장려한다. 

1887년         정해담판 

1890년         월간국을 무간국으로 고친다. 청은 머리모양 복장을 중국식으로 한 조선인에 대해서 토지소유권을 인정한다. 

1897년         이씨조선은 중국과의 조공관계를 끊고 독립을 선언한다. 

1900년         의화단사건을 계기로 로씨아는 만주를 점령. 로씨아군이 국자거리에 침입. 중국인은 길림방면으로 피난했기 때문에 조선이민이 급증. 

1901년         이때부터 봉천(심양)의 서탑에 조선인 집단으로 자리잡기 시작. 

1902년         연길청이 설치. 조선정부는 이범윤을 북간도관리사로 임명. 이범윤은 사병단을 만들어 조선이민을 보호한다. 

1906년         조선인에 의한 중국에서 처음으로 되는 근대적인 학교인 서전서숙 학원을 룡정에 설립. 학생수22명(지금은 "서전서숙 유적지"라고 씌여진 기념비가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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