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2. 고조선의 발전

작성자: 최고관리자님    작성일시: 작성일2015-09-24 14:49:06    조회: 577회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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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chaoxian2.jpg고조선의 본래의 이름은 조선이다. 일연은 조선을 위만이 집권했던 "위만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고조선(옛조선)으로 기록하였다. 지금의 고조선이란 명칭은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과 구별하여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명칭이다.

중국의 "관자", "전국책", "사기" 등 옛 력사책의 기록에 조선이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한다. 이 책들은 기원전 6, 7세기 또는 3, 4세기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국가의 모습을 갖춘 고조선은 대체로 4세기 이전, 즉 6, 7세기 무렵부터 존재하였음이 틀림없다.

단군신화에 의하면 단군이 처음 도읍한 곳은 평양성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평양성이 지금의 평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신화가 기록된 때는 많은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기도 하며 옛 지명은 자주 바뀔뿐만아니라 같은 지명이 여러 곳에서 사용되기도 하여 그 위치를 정확히 알아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조선의 성립과 발전과정은 청동기 문화의 발전과정과 대체로 일치하다. 대표적인 초기 청동기 유물인 비파형 동검이 주로 출토된 곳은 중국의 료동 지방을 중심으로 한반도 서북부에 이르는 지역이다. 따라서 청동기 유물, 유적 분포, 문헌 기록을 종합해 볼 때 고조선 초기의 중심지는 료동지방이였다. 비파형 동검의 출토지역은 대체로 고조선의 령역과 일치하고 있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하던 고조선이 처음으로 중국과 충돌하게 된 것은 전국시대 7웅의 하나인 연나라와의 대립이다. 기원전 4세기 말부터 3세기 초에 연나라는 가장 강성하였다. 연의 침입으로 고조선은 서쪽의 일부 지방을 잃기도 했으나 곧 되찾았다.

대체로 이즈음 고조선은 그 중심지를 평양부근으로 이동한것으로 보인다. 료동지방의 비파형 동검을 계승하여 나타난 세형 동검이 료동지역에서는 출토되지 않고, 한반도 지역에서 주로 출토된다는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고조선은 처음에 료동 지방을 중심지로 하였다가 평양 부근으로 이동하여 세형 동검 문화를 이룩하였다고 볼수 있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3세기말 진나라가 전국 시대의 혼란기를 통일하였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유망민들이 대거 고조선으로 이주하여 왔다. 이중 위만이 고조선으로 망명한것은 한나라의 류방이 초나라의 항우를 물리치고 중국을 재통일한 직후였다.

당시 고조선은 준왕이 지배하고 있었다. 준왕은 그를 신임하여 서쪽 1백리의 땅을 주고 변경을 수비하게 하였다. 그러나 위만은 여기에서 세력을 키워 기원전 194년 준왕을 몰아내고 왕위를 빼앗았다. 이때부터를 단군조선과 구분하여 위만조선이라고 한다.

위만 조선에 이르러 고조선은 철기 문화를 수용하여 더욱 발전하였다. 이 무렵 고조선은 부족 연맹 형태의 국가 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왕 아래 상, 대부, 장군 등의 관직을 갖추었으며 대외 방어를 위한 강력한 군대를 육성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위만의 손자 우거왕 때에 이르러서는 중국 한나라의 가장 강력한 적대국으로 등장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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