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3. 왕자의 란

작성자: 최고관리자님    작성일시: 작성일2016-04-13 14:47:26    조회: 410회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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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oxian3.jpgb_arow_06.gif 이방원의 란 
태조의 다섯째 아들이였던 이방원(태종)은 개국공신세력에 대해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조선왕조개창의 일등공신으로 태조의 총애를 받으며 국정을 도맡았던 정도전에 대해서는 더욱 큰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와 같은 이방원과 정도전사이의 불화는 세자책봉문제가 터지면서 표면화하였다. 

태조의 정실(본 부인)이였이던 한씨는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전에 이미 세상을 떠나고 당시 계비(둘째 부인) 강씨에게서 나은 이방석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이방원과는 이복형제인 셈이다. 사실 조선건국과정에서 이방원은 악역을 맡았다. 그러나 이방원의 공로는 매우 컸다. 따라서 이방원은 자신이 세자로 책봉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방석의 스승이기도 했던 정도전과 왕후 강씨의 후원에 힘입어 이방석이 세자로 책봉되였다. 이에 이방원이 불만을 품는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태의 배경에는 왕권과 신권의 두 축이 물려있었다. 

이방원자신의 불만도 있었으나 약화된 왕실의 위상도 이방원을 움직이게 만든 요인이였다. 그는 하륜, 이숙번 등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며 암암리에 자신의 세력을 규합해나갔다. 마침내 남은의 소실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정도전, 남은, 심효생 등은 이방원의 기습을 당하여 목숨을 잃고 말았다.(1차 왕자의 란) 

이즈음에는 대다수의 비공신관료들이 이방원의 편에 서있었기때문에 태조의 힘으로도 이러한 사태에 대해 제재를 가하지 못하였다. 태조가 할수 있었던 일은 이방원 대신 장자인 이방과(정종)를 세자로 책봉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자신의 형인 이방과가 세자로 책봉되였다는 소식을 들은 이방원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방과형님은 내가 두눈만 치떠도 놀라 왕위에서 피신할 사람이니 걱정마시오" 

비록 정종이 왕위에는 올랐으나(1398) 실제 왕은 이방원이나 다름없었다. 정치적실권은 모두 이방원이 쥐고있었기때문이다. 정종이 즉위한지 1년쯤 지났을무렵 이방원의 형인 이방간이 이방원을 제거할 계략을 꾸몄으나 사전에 발각되여 실패하였다. 이방원은 이를 계기로 정종을 왕위에서 물러나게 하고 자신이 직접 왕위에 올랐다.(2차 왕자의 란, 1400) 

b_arow_06.gif 태종의 왕권강화통치 
태종 이방원은 정치 및 군사제도 등에 대한 대폭적인 개혁에 착수하고 이를 강력히 집행함으로써 중앙집권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사병을 혁파하여 병권을 장악하였고 신권을 대변하던 도평의사사를 페지하고 의정부를 신설하였다. 아울러 행정실무를 맡아보는 육조의 기능을 강화시키고 육조에서 직접 왕에게 보고하는 육조직계제를 실시하여 왕권을 강화하였다. 이밖에 양전사업을 실시하여 국가재정의 기반을 마련하고 호패법, 신문고제도 등을 실시하여 민생안정과 부국강병의 기틀을 다져나갔다. 

이와 같은 태종의 업적은 다음 세종대에 이르러 한차원 높은 정치를 가능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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