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8. 가야의 건국과 발전

작성자: 최고관리자님    작성일시: 작성일2015-09-24 15:14:10    조회: 1,169회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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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_arow_06.gif 가야국
신라 유리왕 19(기원42년)년에 변한의 땅에 김수로왕의 형제 여섯사람이 세운 여섯 나라(금관가야, 대가야, 소가야, 아라가야, 성산가야, 고령가야)를 통털어 가야국(가락국)이라고 한다. 

sanguo8.jpg"아직도 나라가 없던 시절에 가락지역에서는 주민들이 각 촌락별로 나뉘어 생활하고 있었는데 3월 어느날 하늘의 명을 받아 9간(九干:族長) 이하 수백명이 구지봉(龜旨峰)에 올라갔다. 그곳에서 그들이 하늘에 제사지내고 춤추고 노래하자 하늘로부터 붉은 보자기에 싸여진 금빛그릇이 내려왔는데 그 속에는 태양처럼 둥근 황금색의 알이 여섯개 있었다. 
12일이 지난 뒤 이 알에서 남아가 차례로 태어났는데 그 중 제일 먼저 나왔기때문에 이름을 수로라 하였다고 한다. 주민들은 수로를 가락국의 왕으로 모셨고 다른 남아들은 각각 5가야의 왕이 되였다. 이때가 42년(후한 건무 18)이였다고 한다. 
수로는 즉위 후 관직을 정비하고 도읍을 정하여 국가의 기틀을 확립하였다. 그리고 천신의 명을 받아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온 아유타국(阿踰國)의 왕녀인 허황옥(許黃玉)을 왕비로 맞이하였다. 수로왕은 157년을 재위하다가 죽었는데 그 아들 거등왕이 뒤를 이었다." --- 삼국사기 

가야국은 삼국시대에서 아주 작은 나라로서 그 활동이 그다지 활약적이지 못하다. 532년에 금관가야가 신라 법흥왕에 항복하여 멸망하고 562년에 신라 진흥왕이 대가야를 멸망(그사이 기타 가야련맹국이 차례로 신라에 병합)함으로써 가야국은 신라에 귀속된다. 하지만 수로왕은 금관가야가 신라에 병합된 후에도 가야의 시조로서 계속 봉사(奉祀)되였고 금관가야의 왕족은 진골귀족으로 신라에 편입되여 신김씨(新金氏)라 칭성하면서 신라의 왕족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다. (김유신이 바로 금관가야의 후손이다) 

b_arow_06.gif 가야국의 력대의 왕 
b_bulet_01.gif금관가야 

제1대왕 수로왕 (42~199) 가락국 또는 금관가야의 시조 
제2대왕 거등왕 (199∼253) 수로왕(首露王)과 허왕후(許王后)의 아들. 
제3대왕 마품왕 (253∼291) 
제4대왕 거질미왕 (291∼346) 
제5대왕 이시품왕 (346~407) 
제6대왕 좌지왕 (407∼421) 
제7대왕 취희왕 (421∼451) 
제8대왕 질지왕 (451~492) 
제9대왕 겸지왕 (492~521) 
제10대왕 구형왕 (521∼532) 구충왕(仇衝王) 또는 구해왕(仇亥王). 신라 법흥왕 19년(532)에 왕비 및 세 아들인 장남 노종(奴宗), 중남 무덕(武德), 계남(季男) 무력(武力)과 함께 국고(國庫)의 보물을 가지고 신라에 항복. (김유신이 바로 무력의 손자이다.) 

b_bulet_01.gif대가야 
제1대왕 이진아시왕 내진주지(內珍朱智)라고도 함. 대가야의 시조. 
제9대왕 이뇌왕(異腦王) 

제10대왕 도설지왕(道設智王) 이뇌왕의 아들. 대가야의 마지막 왕. 가야연맹제국이 차례로 신라에 병합되었지만 대가야만은 홀로 버티었으나 최후로 562년(진흥왕 23) 사다함(斯多含)이 거느린 5천의 기병을 선봉으로 한 정벌군총사령관 이사부(異斯夫)의 대군에 항복하였다. 이로써 16세 520년의 대가야는 멸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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