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6. 백제의 해상진출

작성자: 최고관리자님    작성일시: 작성일2015-09-24 15:12:56    조회: 670회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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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guo6.jpg고이왕이후 백제의 중앙집권화정책을 마무리지은 이는 4세기중엽 근초고왕(재위 346~375)이였다. 근초고왕은 먼저 유력부족인 진씨와 손을 잡고 왕권을 강화하였으며 담로를 설치하여 지방에 대한 직접지배에 들어갔다. 

국왕중심의 정치체제를 확립한 근초고왕은 마한의 나머지 세력을 통합하여 호남 곡창지역을 확보한뒤 5호 16국이라는 동아시아의 정세변동을 리용하여 정력적인 팽창정책을 취하였다. 이 시기를 기록하고 있는 중국의 력사책들은 백제의 세력이 료서와 산동반도에까지 진출하고 있음을 전하여 주고 있다. 5호 16국의 혼란을 틈탄 백제의 해상진출이였다. 

백제의 해상활동은 일본을 무대로 특히 활발하였다. 이 당시 백제왕이 왜왕에게 준것으로 여겨지는 칠지도의 량면에 새겨진 글은 백제세력이 일본에 강하게 뻗쳐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왕인과 아직기를 일본에 파견하여 유학을 전래한 이 시기의 사실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활발한 해상진출과 함께 근초고왕은 고구려를 쳐서 고국원왕을 전사시키는 등 정복적 팽창사업을 계속 추진하였다. 

그러나 5세기에 들어 백제는 고구려의 남하 정책으로 위축되여갔다. 장수왕에게 수도를 빼앗기고 한강류역을 상실한 백제는 신라와의 동맹을 통해 이에 맞서고 있었다. 더구나 웅진(공주)천도이후 해, 진, 목씨 등 한성의 옛 귀족들이 정치의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백제내부의 정치적 대립이 심해지고 있었다. 

이러한 혼란을 수습하고자 노력한 이가 동성왕(재위 479~501)이였는데 그는 금강 류역의 사, 연, 백씨 세력을 등용하여 한성의 옛 세력을 약화시키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이 과정에서 귀족에게 피살당함으로써 정치적 혼란은 계속되였다. 

6세기 성왕시기(재위 523~554)는 백제의 희망과 좌절을 함께 보여준 시기였다. 결단력이 뛰어난 군주로 전해지는 성왕은 사비지역의 사씨세력과 손잡고 사비성천도를 단행하여 왕권강화를 꾀하고 귀족세력을 약화시켰다. 성왕은 국왕직속관청인 22부를 중심으로 정치를 운영함으로써 좌평중심의 귀족회의체를 약화시켰고 인도에서 돌아온 겸익을 맞아 불교진흥에도 힘썼다. 

나라안의 정치적 성공을 바탕으로 성왕은 고구려 장수왕에게 빼앗긴 한강류역의 회복에 나섰다. 그러나 동맹군이였이던 진흥왕의 배반으로 한강류역을 신라에게 빼앗기게 되면서 신라에 대한 보복전을 전개했고 이 과정에서 결국 성왕은 관산성(충북 옥천)의 패배로 전사하였다. 중흥을 위한 성왕의 노력이 좌절된후 백제의 국력은 급속히 약화되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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