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3. 박혁거세가 신라를 세우다

작성자: 최고관리자님    작성일시: 작성일2015-09-24 15:11:00    조회: 713회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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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에서 고구려와 백제의 움직임이 활발해질 무렵 한반도의 동남부, 경상남도 지역에서도 부족국가들이 형성되여가고 있었다. 이 부족국가중의 하나가 사로국이였다. 사로국은 신라의 옛 이름이다. 사로국의 건국설화는 다음과 같다. 

sanguo3.jpg"일찍이 고조선의 유이민들이 여섯촌락을 이루고 있었다. 하루는 양산촌의 나정이란 우물 옆 숲속에서 말이 무릎을 꿇고 울고 있는지라 가서 보니 말은 간데없고 크고 붉은 알만 남아 있었다. 알을 깨뜨려 보니 사내아이가 모습을 드러내였다. 6부사람들은 그 아이의 출생을 영험스럽게 여겨 장성함에 이르러 임금으로 삼았다. 큰 알이 박과 같았다 하여 박으로써 성을 삼았다. 룡이 알영우물에 나타나 그의 오른쪽 갈빗대에서 한 계집아이를 낳았는데 입술이 닭의 부리와 같이 생겼다. 이상하여 월성 북천에 가서 씻으니 부리가 떨어지고 고운 입술이 나타났다. 한 할머니가 데려다 길렀는데 우물 이름을 따서 알영이라 이름을 지었다. 그 계집아이가 자라 덕이 있거늘 시조가 이를 듣고 맞아서 왕비를 삼았다. 그때 사람들이 혁거세와 알영을 두명의 성인이라고 불렀다." - 『삼국사기』 중에서 

신라의 건국설화 역시 기마기술을 갖춘 북방 유이민의 이동과정을 담고 있다. 하늘신 부족(빛, 알, 말로 상징)집단이 발달한 금속 문화를 가지고 이동해오면서 미리 정착하고 있던 땅신 부족(개천, 우물, 닭으로 상징)집단과 결합하는 과정을 표현하였다고 할수 있다. 

신라의 정치적 변천은 지배자의 호칭변화에서 그 과정을 짐작해볼수 있다. 초기 신라의 지배자는 거서간 또는 차차웅(제사장)으로서 경주일대에 한정된 제정일치적 사회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후 신라의 세력은 석탈해와 련합함으로써 울산, 감포 방면으로 확산되였다. 박, 석, 김씨 세력이 중심이 되여 이루어진 이 부족련맹체단계의 지배자 명칭이 이사금이였다. 

이사금시대는 신라가 한반도의 동남부지역의 주도적 세력으로 성장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제사를 주관하는 천군의 존재가 따로 있어 제정분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전시대에 비하여 군장인 이사금의 정치력이 성장하고 있었다. 

부족 련맹체적인 신라의 국가체제가 중앙집권국가체제로 전환되는 때는 마립간(우두머리, 대수장의 의미) 호칭을 사용하는 내물왕(재위 356~402)부터였다. 내물왕은 각 지역의 부족장들을 경주로 이동하게 함으로써 중앙귀족화 시켰고 이에 따라 6부의 정치체제를 마련하였다. 이를 통하여 내물왕은 김씨의 왕위독점을 이루었고 진한의 여러 나라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시켜 나갈수 있었다. 

내물왕의 초기시기는 백제의 근초고왕 시대였다. 당시 백제는 낙동강류역에 세력을 뻗쳐 신라를 압박하는 동시에 고구려를 공격하여 평양전투에서 고국원왕을 전사시켰기때문에 신라와 고구려사이에는 자연스럽게 동맹관계가 형성되였다. 

내물왕은 이때의 고구려와의 우호관계를 바탕으로 왜구의 침략으로 위기를 맞은 때에는 광개토왕의 구원을 받기도 하였고 재위후반기에 들면서 고구려를 통해 중국의 전진에 사신을 보냄으로써 국제무대에도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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