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계통의 이동은 한반도 남부에까지 미쳐서 마한 54국 중의 하나가 되는 백제를 성립시키게 되였다. 백제의 건국설화는 이같은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온조의 설화는 백제건국의 중심이 된 유이민 집단이 부여계통의 온조와 비류세력이였음을 보여주고있다. 아마도 초기에는 형이였던 비류세력이 강성하였다가 뒤에 온조세력으로 주도권이 넘어간것으로 추측한다.
그후 백제는 다른 부족들을 정복 또는 수용하면서 그 세력을 확대시켜 나갔다. 그 대표적부족이 해씨와 진씨였다. 해씨는 부여계통의 또다른 이주집단인 해루의 세력이였고 진회로 대표되는 진씨는 아마도 한강류역 즉 위례성(한성)부근의 토착세력이였던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백제의 성장과정은 린접한 기존정치세력과의 싸움의 련속이였다. 그중 하나의 상대는 한군현 세력이였고 또 하나는 마한세력이였다.
고이왕(재위 234~286)은 중앙집권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면서 한강이북의 중국 군현과 맞서는 동시에 마한의 가장 유력한 부족세력이였던 목지국(익산)을 점령하여 한반도의 중부지방에 지배권을 확립하였다. 고이왕 역시 고구려의 태조왕과 같이 부족장세력을 중앙귀족화하면서 5부체제를 확립하였다. 고이왕은 부족장세력을 중앙귀족으로 편입시키기 위하여 좌평과 16관 등의 관직체계를 마련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고이왕은 온조계 왕실의 권한을 강화할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