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5. 초기국가의 사회

작성자: 최고관리자님    작성일시: 작성일2015-09-24 15:08:20    조회: 1,051회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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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_arow_06.gif삼한의 성립
위만이 고조선의 지배권을 탈취할 무렵인 기원전 2세기경, 한강 이남의 지역에는 진국이라는 세력집단이 있었다. 진국이라 불려진 세력중에서 가장 유력한 부족세력은 지금의 익산 지방을 중심으로 성장한 목지국이였다.

위만에게 지배권을 빼앗긴 고조선의 준왕도 이 지역으로 망명하여 스스로 한왕이라고 일컬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어디에 정착하였는지는 알길이 없다. 다만 지금도 준왕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기씨, 한씨, 선우씨 등은 익산의 쌍릉을 준왕의 무덤으로 생각하여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다. 또 고조선이 멸망하면서 한나라 사람의 억압과 수탈을 피하여 한강 이남지역으로 남하한 유이민 집단도 적지 않았다.

guchaoxian5.jpg이 지역의 족장들은 한이 고조선의 옛 땅에 설치한 군현과 접촉을 꾀하여 앞선 철기문화의 수용에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기원 1세기 전후하여 철기문화가 널리 전파되였다. 이 같은 배경하에서 마한 54개국, 진한과 변한 12개국의 초기 국가가 성립되였다. 마한, 진한, 변한을 합쳐 흔히 삼한이라고 한다.

삼한의 규모를 보면 마한의 대족장 세력은 만여호, 소족장 세력은 수천호를 거느려서 총 호수가 10여만에 이르렀다. 그리고 진한, 변한의 대족장 세력은 4, 5천호, 소족장 세력은 6, 7백호를 거느려서 그 총 호수가 4만에 이르렀다고 한다.

삼한에 있어서 부족 사회의 발전 정도는 북부 지역에 비하여 훨씬 뒤져 있었다. 서기 2, 3세기에 이르기까지 삼한 사회는 부족간의 권력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신지, 읍차 등으로 불리는 족장 세력이 있었으나 그들은 그때까지 지역적으로 조직화된 권력을 형성하지 못하여 서로 제어할수 없었다.

그러나 다른 지역과 달리 삼한에서는 정치와 종교가 일찍부터 분리되여 있었다. 정치 권력을 가진 족장 이외에 제사권을 장악한 천군이라는 제사장이 따로 있었다. 천군은 소도라는 특별구역을 지배하였는데 여기에는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 북, 새 등을 달아서 신성지역의 표시로 삼았다. 이것을 솟대라고 하는데 오늘날까지도 그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마을이 많다. 솟대는 제사지낼 때 땅의 기원을 하늘에 전해주는 것이라 생각했으며 그 매개물인 새를 그 정상에 꽂아 놓았다. 새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간세상과 하늘을 연결시켜 주는 영물로 생각하였던 동물이다.
소도는 법률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으로 이를테면 죄인이 이 지역안으로 도망하여 오더라도 그를 붙잡아 가지 못하게 되여 있었다. 천군이라는 제사장은 부족원 전체를 위한 축원의 제사 의식을 주관하였으며 그것은 다른 지역과 달리 원래 족장의 기능의 일부가 분리되여 이를 대행하게 한것이라 여겨진다.

b_arow_06.gif춤과 노래를 즐기는 민족
초기 국가의 성립은 일시에 이루어진것은 아니였다. 선진지역의 부족이 장기간에 걸쳐 후진 지역을 정복, 예속시키면서 부족련맹형태의 국가를 만들어 간것이 초기 국가의 모습이였다. 국가의 성립과 더불어 여러 부족과 넓은 령토를 효률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사상, 지배 체제 등이 생겨났다.

이미 고조선이 경우에서와 같이 이 과정에서 생겨난것이 건국신화이다. 건국을 주도한 지배 부족의 지배층은 자기의 조상을 하늘에 련결하여 "하늘의 아들", "태양의 아들"이라 하였다. 그들은 하늘에서 조상을 구함으로서 곰, 말 등 지상의 동물을 숭배하는 각 부족 고유의 신앙 또는 사상형태를 통괄하고 지배하였던것이다.

법률은 이러한 사회를 효률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중요한 도구로서 생겨났다. 지배 규모가 커지면서 예전의 족장의 계률을 대신한 법률이 생겨난 것이다. 고조선의 8조금법의 일부와 부여의 법률 4조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대체로 남의 생명을 해치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면 노예로 전락시키는 등 중벌을 내림으로써 국가적 질서를 유지하려고 한것이다.

초기의 국가는 철제 농기구의 확산과 함께 농경을 기반으로 성립된 사회였다. 농업은 공동의 노력으로 이루어졌으며 따라서 문화 역시 집단적, 공동적 성격을 띄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풍년제, 추수 감사제 등으로 나타났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삼한의 10월제 등의 제천 행사가 바로 그것이다. 부여의 경우에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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